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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Sep 01. 2022

미셸은 사실 아침을 먹지 않는다.

H 마트에서 울다.


유기농 순두부, 신선한 깻잎, 그리고 생면으로 만든 즉석 자장면.


모두 내가 좋아하는 식자재와 음식이다. ‘오리엔탈(oriental)’이라는 단어가 붙은 국적 불명의 아시안 식료품점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품목이기도 하다. 냉동실 한 편에 쌓인 모차렐라 치즈 핫도그나 국물 떡볶이를 보고 반색하며 집어 들지 말자. 그런 곳의 한국 식자재는 한국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중국 브랜드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 미셸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미셸을 처음  곳은 ‘191toole’라는 미국 애리조나 주 투손의  라이브 바다. 세월이 느껴지는 작은 공연장이었다. 나와 남편은 전혀 모르고, 남편 동료인 토마스의 추천으로 오게  자리였는데, 사실  처음부터 우려스러웠다. 일본식 아침(Japanese Breakfast)이라니. 일본식 아침이야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겠으나 과연 인디 밴드 이름으로 적합할까 싶었다. 온갖 검색 엔진 사이트에서 알맞게 토막  연어구이와 미소 장국과 겨루어야  텐데 아주 유명해지지 않고서야 과연 승산이 있을까 싶었다. 물론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반짝이는 하얀 비닐 옷에 강력한 어깨 뽕을 장착하고 나타난 미셸은 의외로 고요했다. 스모그 머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뿌연 안개에 발목을 담근 채로 덤덤하고도 신비롭게 자기 세계로 서서히 좌중을 이끌었다. 무대에 선 그는 완벽한 리더이자 싱어송라이터였다. 미국인인 그는 영어로 제주도를 노래했고, 그리운 엄마에 대해 노래했다. 몇 년 전 한국인 엄마를 암으로 잃은 29살 젊은 아티스트의 공연은 마치 애도와도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저승사자(psychopomp)라 이름 붙은 그의 앨범을 집어 들었다. 앨범 표지엔 무언갈 잡으려는 듯, 손을 뻗은 이제는 돌아가신 그의 엄마의 젊은 시절이 박혀있었다. 80년대 특유의 과장된 헤어스타일과 프릴이 달린 흰 블라우스, 그리고 푸른 하늘 아래 사선으로 기운 기왓장 지붕. 그곳은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이었다.


다시 미셸을 만나게 된 건 그로부터 4년 후 텍사스의 내 침대 위에서였다. 더 뉴요커(The New Yorker) 잡지에 연재한 글들을 엮어 출판한 ‘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라는 그의 수필집을 통해서였다.

(휴스턴의 어느 H마트의 전경. 사진=박인정)



H마트란 한국의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미국의 대형 체인 마트로 한국 식자재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그곳엔 홍콩반점도 있고, 뚜레쥬르도 있다. 어쭙잖은 퓨전 한식으로 미각을 혼란스럽게 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는 얘기다. H마트를 중심으로 괜찮은 한식당이나 미용실이 우후죽순 생겨나 작은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기도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누군가가 나에게 미국의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물으면 난 망설임 없이 차로 30분 안에 H마트를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대답한다.


타지에 오래 살게 되면서 깨달은 건 식사가 단순히 영양 공급의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음식은 냄새만 맡아도 지나간 추억을 상기하고, 종일 사로잡힌 걱정과 고민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알맞게 익은 시원한 동치미와 생강 향이 알싸한 엄마표 수정과, 얇게 저민 무나 물렁뼈가 이따금 씹히는 홍어 무침. 언제나 좋아하지만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은 그 자체로 향수다.


그래서 난 요리를 한다. 갈 수 없는 그리움을 뜨끈한 한 그릇으로 양껏 채우고 나면 어찌어찌 내일을 버틸 힘을 얻는다. 한가득 소꼬리를 사다가 반나절 동안 찬물에 담가 피를 빼고, 칫솔질로 꼼꼼히 불순물을 제거하고, 물을 추가하고 뼈를 걸러내어 진하고 뽀얗게 우린 곰국을 남편과 친구들에게 푸짐히 대접한 연유도 결국 내 그리움을 덜기 위해서였다.


책으로 만난 미셸은 4년 전 내가 무대 위에서 마주한 카리스마 넘치는 미국인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르는 대단한 뮤지션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몇 안 되는 다인종 아이이자 한국인 엄마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몰래 들어와 벽틈에 끼어 죽은 다람쥐의 사체 냄새가 진동하는 싸구려 월세방에 살면서 그만 꿈을 접어야 하나 갈등하는 이 시대의 어느 젊은이였다.


그리고 여느 엄마의 딸이었다. 불치병에 걸린 엄마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저승사자의 손길에 어쩔 줄 모르고 끊임없이 좌절하고 낙담하는. 엄마가 해준 갈비와 파와 기름으로 무친 아삭한 콩나물과 국물이 넉넉한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그리움을 덜고자 H마트에서 직접 옹기를 사고, 유튜브를 보며 총각김치와 배추김치를 담고, 푸드 코트에서 식사하는 할머니가 짬뽕에서 건져낸 홍합 껍데기를 자기 딸 밥뚜껑에 더는 모습에 기어코 눈물을 터트리고야 마는.

(2018년 4월, 투손의 191tool에서 열창하는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리더 미셸. 사진=박인정)



이렇게 유명해질지 모르고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시아 국가인 일본에서 영감을 얻어 밴드 이름을 지었다는 미셸은 영락없는 미국인이다. 미소 장국과 연어구이와 겨루게 되어 우려된다는 말은 핑계일 뿐, 반절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일본식으로 밴드 이름을 지은 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국적과 출신을 운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4년 전, 미국 인디 밴드에 전혀 문외한 우리를 공연장으로 이끈 건 히스패닉인 토마스가 아니었던가. 나는 나도 모르게 편협한 마음으로 세상에 잣대를 들이댈 때면 종종 그때 그 공연장을 떠올린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일본식도 멕시코 식도 아닌 단지 인류의 공통언어인 음악으로 충만했던 그곳의 풍경과 내가 느꼈던 감동을 말이다.


H마트의 육류식품 매대에서 잘 재운 LA갈비를 집어 들며 나는 문득 바라본다. 그리운 엄마의 김치를 만들기 위해 한아름 옹기를 안고 마트를 나서는 당신의 뒷모습을.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먹어봐요!’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의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외치고 싶다. 섞이면 몹쓸 것들도 있지만 짜파구리나 비빔밥처럼 오히려 더욱 빛이 나는 것들도 있다고.


무엇보다 당신이 그렇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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