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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Aug 26. 2022

무너질 수 있는 갑판 위에서 춤출 수 있는 용기를.

바이오스피어2, 유리로 지은 방주 이야기 (2)


과학이라는 씨실과 예술이라는 날실로 엮다.



바이오스피어리안들에게 닥친 가장 큰 위기는 산소 부족이었다. 한 달에 5%씩 떨어지던 산소 농도가 급기야 14.2%까지 떨어졌다. 그것은 4,5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 생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상당수의 바이오스피어리안들이 고산병을 겪었고, 산소를 조금이라도 덜 소비하기 위해 나무늘보처럼 움직여야 했다. 도서관으로 가는 100여 개의 계단을 오를 힘조차 없어 아무도 책을 빌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산소 부족은 농사의 흉작으로 이어졌다. 퇴비가 내뿜는 이산화탄소까지 가세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동식물이 살아가기 열악한 환경에서 바퀴벌레와 개미는 폭발적으로 이상 증식했다. 식당의 싱크대 안까지 바글대는 벌레들을 처리하기 위해 진공청소기를 동원할 정도였다. 한때는 인간이 만든 에덴의 동산이라고 일컬어지던 바이오스피어2는 점점 해충이 득시글거리는 지옥이 되어갔다.


(바이오스피어리안들이 2년간 사용한 주방. 지금은 세트장처럼 깨끗하다. 사진= 박인정)



바이오스피어2의 안팎 사람들 모두 머리를 맞대고 산소가 결핍되는 원인을 규명해내려 애썼지만 전부 헛수고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는 와중에도 8명의 바이오스피어리안들은 굶주리고 숨이 차 올랐다.  바나나로 빚은 술이 채 다 익기도 전에 사이좋게 나눠마시며 연구실적과 예술적 영감을 공유하던 끈끈한 공동체는 어느새 편을 갈라 옳고 그름을 따지기 시작했다. 오랜 산소와 영양분 부족으로 몸도 마음도 점차 병들어갔다. 이제는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였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외부에서 산소를 유입할 수밖에 없었다.


효과는 대단했다. 산소를 공급하자마자 기력 없이 누워있던 바이오스피어리안들은 벌떡 일어나 웃기 시작했다. 연구단지 안을 뱅뱅 돌며 원 없이 달리기도 했다. 신발 밑창이 힘차게 바닥을 차는 소리를 들어본 지가 얼마 만인지 몰랐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덜어지고 십 년은 젊어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되찾게 된 기쁨과 달리, 세상은 그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던지기 시작했다. 막대한 돈을 들여 참담히 실패한 실험이라며 전문가의 날 선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각종 언론은 과학이라는 이름에 가려져 있던 사기극의 거품이 마침내 걷어지고 실체가 드러났다며 예고 없던 산소 공급을 맹비난했다.


8명의 바이오스피어리안들 만큼이나 질타를 받았던 인물은 존 앨런(John Allen)이었다. 그는 전위예술의 선구자이자 바이오스피어 2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연구책임자였다. 텍사스의 억만장자 에디 바스(Ed Bass)가 막대한 돈을 투자해 4,000평 규모의 바이오스피어2를 건설한 이유도 존 앨런의 남다른 발상과 카리스마를 신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세상은 다르게 존 앨런을 판단했다. 그의 저의를 의심했다. 바이오스피어2는 처음부터 잘못 꿰인 단추 같은 실험이라고, 과학이 아닌 허상에 뿌리를 둔 지구 종말론자들의 전체주의적 음모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한순간에 존 앨런은 예술적 감각과 과학지식을 겸한 특출한 리더에서 컬트 집단을 이끄는 간교한 망상가가 되었다. 그가 과거 히피들을 데리고 배를 지어 전 세계를 항해하며 온갖 사상을 전파했다는 사실은 그런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 배가 바로 헤라클레이토스였다.


(바다에서 40년간 항해한 헤라클레이토스, 사진= Institute of Ecotechnics)



와. 마치 벙커에 달린 문처럼 두꺼운 강철 문을 열어젖히자 내 입에선 절로 탄성이 나왔다. 마치 저온의 찜질방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온온한 습기가 나의 코점막에 스며들며 각종 풀과 젖은 흙냄새가 닿은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곳이 평균 여름철 습도가 16%에 불과할 정도로 건조한 애리조나 사막 위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한눈에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높고 울창한 숲과 각종 잎사귀와 넝쿨로 빼곡한, 최대 높이가 27m가 되는 거대한 인공 열대우림의 규모였다. 내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바나나 잎사귀와 여러 양치식물과 온갖 이름 모르는 다양한 식물들로 어찌나 가득 차 있던지, 온통 유리로 지어진 대낮의 온실 안이 새벽처럼 어두웠다. 콘크리트로 만든 바위에서는 힘차게 폭포가 흘렀고,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카리브해 암초를 그대로 본떠서 만들었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바닷속에 더는 산호초가 살지 않았으나, 그 깊이와 넓이는 내가 서 있는 곳에서도 충분한 감동을 주었다. 반들반들한 갈색 넝쿨이 손을 뻗은 난간 앞에 서서 나는 오랫동안 그 정글과 사막을 바라보았다.



 개척자들의 손에서 빚어진 배와 지구.
이 지구를 더 풍요롭게 만든 것은 실패에서 얻은 교훈과 변수를 줄인 성과.



미국과 한국에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연남동의 어느 카페에서, 남편과 동행한 맛집에서 때때로 나는 그 바다와 정글로 돌아갔다. 쓰레기 배를 고쳐 여섯 대양을 항해하고, 지구가 얼마나 많은 변수와 확률을 극복하고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는 고마운 존재인지 몸소 일깨워준 개척자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질문 하나가 내 머릿속에 부상했다. 과연 그들이 과학을 등한시한 허상에 사로잡힌 이들이었는지. 과학과 비과학이라는 잣대로 그들의 업적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지.


(바이오스피어2 내 1858m² 규모의 열대우림. 사진= Dartmouth Alumni Magazine)



그 배와 그 지구에선 과학과 예술은 하나로 얽혀있었다. 손수 지은 배의 갑판에서 연극제를 벌이고, 비와 가뭄을 관장할 수 있음에도 시와 노래로 허기진 뱃속을 달래야 했던 개척자들의 노고와 희생을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발상을 이 바다에 띄우고 이 땅에 세운 그들의 도전은 빛이 난다. 단순히 즉각적인 실패와 성공으로 재단할 수 없다.


미국에서 남편이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감사하게도 나에겐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 다들 분야는 다르지만, 대부분 연구에 종사하는 친구들이다. 논문 실적을 위해 실험을 거듭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느라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은 언뜻 위대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예술가의 자세를 닮았다. 나는 미술을 전공했고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 남편을 포함한 연구자들의 애환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보이고 짚이는 것들이 있다.


애리조나의 척박한 사막에서 6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실패와 비판을 감수하고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 실천하지 않은 계획 속에 안위하며 실패를 규정짓는 건 쉽고, 내가 생각하는 성공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건 어둠 속에서 빛을 그리는 것만큼이나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다. 누군가에겐 뜬구름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배에 돛을 다는 사람들과 그 배의 갑판에서 춤추길 망설이지 않는 용기와 낭만이 있는 이들을 사랑하고 응원한다. 실패는 교훈으로, 하나의 변수를 줄인 성과로 이 지구를 더욱 살기 좋고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날이 점점 더워진다. 부디 우리의 첫 번째 지구 바이오스피어1이 오래 무사해 더 많은 괴짜가 활개 치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



<참고 자료>


팟캐스트: Biospherians - Jane Poynter & Taber MacCallum from Biosphere 2 Podcast by Biosphere 2 University of Arizona

다큐멘터리: Spaceship Earth Documentary

홈페이지: https://www.rvheraclitus.org/

인터넷 기사: BIOSPHERE 2: THE FAILURE OF A UNIQUE EXPERIMENT,

Eight go mad in Arizona: how a lockdown experiment went horribly wrong,

The Biosphere 2 Missions – Failures and Lessons Learned,

Biosphere 2: What Really Happened? 등



영월매일에 동시연재 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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