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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Aug 25. 2022

무너질 수 있는 갑판 위에서 춤출 수 있는 용기를.

바이오스피어2, 유리로 지은 방주 이야기. (1)


반세기 전, 미국 오클랜드의 어느 한적한 해변에서는 배를 건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스로 시너지스트(Synergist)라고 일컫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창조적이며 전 지구적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겠다는 일념으로 뉴멕시코 농장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집과 극장을 건설하고 농사를 지어 살아가던 열댓 명의 젊은이였다. 평범한 주민들의 눈에 그들은 기존 사회의 질서를 부정하고,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둔답시고 생업을 등한시한 채 홀치기 기법으로 요란하게 염색된 옷을 입고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는 히피 부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들은 물질적 풍요보다 예술과 모험을 사랑하는 모임으로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선박을 지어 전 세계를 여행하며 그들의 사상과 예술을 전파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누구도 배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건 쓰레기나 다름없는 중국산 고물 선과 막연한 확신이었다. 만약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배를 지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겠다는.


(헤라클레이토스와 2000년대 선원들, 출처= Institute of Ecotechnics)



그리스 철학자의 이름을 본떠 배의 이름은 헤라클레이토스였다. 시너지스트들은 선박을 짓기 위해 각 전문 분야에서 봉사자들을 포섭했고, 여의찮으면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었다. 20세의 마거릿 오거스틴(Margaret Augustine)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총괄 건축가가 되어 건설 현장과 설계를 도맡았고, 천문항해학을 익힌 프레디 뎀스터(Freddy Dempster)는 컴퍼스를 들고 하늘을 읽는 연습을 했다. 그들은 버려진 주택에서 목재와 못을 가져와 종일 배를 지었다. 마치 물에 떠다니는 연극 설치물 같다고. 누군가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그 정체 모를 배를 향해 던졌다.


마침내 헤라클레이토스가 출항하는 , 예인선에 묶여 천천히 뭍에서 멀어지는 헤라클레이토스는 높은 조류로  관문부터 아슬아슬했다. 이대로 배가 가라앉아도 이상한 것이 없다고 많은 사람은 생각했다. 심지어   동안 오로지 헤라클레이토스의 조선에만 매달린 시너지스트들마저 성공을 장담할  없었다. 10m가 넘는 파도에 헤라클레이토스는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요동쳤다. 공들여 만든 레이더는 결국 부서지고 말았다. 하지만 배는 파도를 이기고 무사히 수면에  올랐다. 너무 기쁜 나머지 시너지스트들은  위에서 어린아이처럼 깡충깡충 뛰었다. 무사히 샌프란시스코만의 골든 브릿지를 지나  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배를 짓는 사람들, 지구를 만드는 사람들.


내가 바이오스피어2 방문한 것은 투손을 떠나기   전이다. 그곳은 진작 가고 싶었던 지역 명소  하나였다. 하지만 막상 가려니 멀기도 하고 솔직히 별것이 있을까 싶어 투손에 사는 6 동안 차일피일 미루다 떠나기 직전이 돼서야 남편의 권유로 마지못해 향한 길이었다. 오라클의 작은 마을에 있는 그곳은 투손보다 해발이 높아 사막 치곤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한때는 2 지구라고 일컬어진 명성이 아직 남아있는 듯했다.


(바이오스피어2의 전경, 출처= Dartmouth Alumni Magazine)



마야의 계단식 피라미드와 타지마할의 돔을 연상시키는 그곳은 바이오스피어2다. 이들은 지구를 바이오스피어1이라고 여겼다. 축구장 22개가 들어갈 만큼 거대한 연구단지 안에는 7m가 넘는 폭포가 쏟아지는 열대우림, 산호초가 사는 바다, 맹그로브 나무가 자라는 담수 습지, 사바나 초원 그리고 사막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었다.


바이오스피어2의 첫 삽이 떠진 1980년대는 우주산업이 활발할 때였다. 더불어 가속화되는 산업화의 영향으로 환경오염의 심각성이 대두되던 때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지구 밖 삶을 상상했다. 과연 그것이 실현 가능한지도 알고 싶었다. 바이오스피어2는 그 꿈을 실험하기 위해 설계된 곳이었다. 5년간 대략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해 3,800종의 동식물이 자라는 미니어처 생물 군계를 현실화한, 역사상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거대한 규모의 도전이었다.


마치 미래의 화성인들을 위한 안내서와도 같은 실험이었다. 공기와 물이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인간이 과연 자급자족만으로 생존할 수 있는지가 그 연구의 핵심이었다. 의사, 동물학자, 식물학자, 기술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전 세계를 누비며 바다의 산호와 우림의 식물을 채취하고, 농사에 쓰일 곡물과 가축을 선별해 두 번째 지구를 채워나갔다. 그 중엔 엄지손가락만 한 벌새와 바퀴벌레 4종도 포함되었다.


(8명의 바이오스피어리안들과 바이오스피어 2의 내부, 사진= Neon)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최종적으로 선발된 4명의 남자와 4명의 여자로 구성된 바이오스피어리안(Biospherian)들은 전 세계에서 몰린 인파와 카메라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우주 정거장만큼이나 굳게 폐쇄된 작은 지구로 들어섰다. 그들은 연구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직접 삽과 갈퀴를 들고 자신들의 식량을 일구었다. 그들이 흘린 땀은 그들이 마시는 물이 되었다. 그들의 배출하는 모든 것들이 공기, 물, 퇴비로 남김없이 순환되었다.


폐쇄된 낙원에서의 삶은 그러나 고달프고 배가 고팠다. 생산이 비효율적인 고기 대신 콩으로 지방과 단백질을 대체해야 했고, 땅콩껍데기마저 귀한 영양분이었다. 그나마 작황이 좋은 고구마와 비트가 그들이 양껏 먹을 수 있는 식자재였다. 베타카로틴이 많이 함유된 고구마를 너무 먹어버린 탓에 그들의 손바닥과 손톱은 오렌지색으로 물들었다. 남자들은 평균 18%의 체중을 잃었고, 그중 한 명은 40킬로그램이나 살이 빠졌다. 허기와 고립감을 달래기 위해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지었다. 그림을 그려 작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인간의 손으로 빚은 방주에 본격적인 위기가 닥쳐온 것은 1년이 조금 지나서였다.


다음 편에 계속.



영월매일에 동시연재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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