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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Aug 23. 2022

푸르지 않아도 괜찮아.

'삭막하다, 참 볼품이 없다.'라는 오해.

여기는 푸르구나.


텍사스주 이스터우드 공항을 빠져나오며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점차 지상과 가까워지는 비행기 안에서 짐작은 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갖가지 나무와 수풀로 우거진 풍경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나오는 황량한 광야 같은 텍사스를 상상한 나에게 안도를 넘어선 감동이었다. 


일단 수분을 가득 머금은 공기부터가 달랐다. 아직 5월임에도 한국의 한여름처럼 무더웠지만 그만큼 푸르렀다. 40도는 가뿐히 넘는 사막에서 버틴 날들이 얼마인데 이 정도는 약과였다. 아직 이름을 알지 못하는 풀과 나무들이 반가웠고, 그 이름들을 하나씩 알아갈 생각을 하니 설레었다. 5년 넘게 살았던 애리조나주의 투손에서는 알고 싶어도 잘 없던 것들이었다. 내가 이토록 초록을 사랑한 사람이라니. 어쩌면 그곳의 척박한 땅이 날 변하게 한 건지도 몰랐다. 


'삭막하다, 참 볼품이 없다.' 작년 겨울, 반년 동안 살 방을 구하러 연남동에 갔다가 맞닥트린 그 공원을 보고도 난 그런 생각을 했다. 가뭄 진 겨울이라 내린 눈 흔적 하나 없이, 분해되지 않은 낙엽과 낙지로 뿌리가 덮인 나무들의 앙상한 가지 끝에 매달린 낙엽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냈다. 그래도 서로 부딪히는 소리는 났다. 애리조나의 아열대 사막을 빽빽하게 채운 선인장과 가시덤불, 그리고 바위에 들러붙은 지의류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막을 닮은 그 공원으로 나는 종종 향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30초밖에 걸리지 않는 데다 연남동치곤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런지 인적이 드물고 한산했다. 야식을 주체하지 못한 날이면 나는 오렌지색 가로등 불을 스포트라이트 삼아 24시간 돌아가는 CCTV 아래서 훌라후프를 돌리곤 했다. 그런 나를 카메라 뒤편의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찜찜한 응원이 되었다. 그래도 기록은 남겠다 싶었다. 


훌라후프를 메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사진=박인정)



자정이 가까워지면 공원 구석에 마련된 공중화장실은 대목을 맞이했다. 배달 오토바이와 화물차, 택시 등 마땅히 볼일 볼 곳 없이 찾아온 기사들이 켜 놓은 비상등으로 모래 대신 깔린 고무매트 위로는 붉게 퍼진 점들이 점멸했다. 신속 배달을 위해,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태워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볼일을 마치고 나온 기사들은 출입만큼이나 신속하게 퇴장했다. 급하게 떠난 탓에 오래 앞뒤로 흔들리는 화장실 문이 멈출세라 또 다른 기사가 얼른 손잡이를 붙들기 일쑤였다. 


과연 손은 씻고 나오는 걸까. 빨라도 너무 빨리 나오는 기사들의 위생 상태를 우려하며 내가 열심히 허릿살을 빼는 사이, 겨울은 가고 봄이 왔다. 목련과 벚꽃이 지자 메마른 가지마다 봄이 옮겨붙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르고 빈틈없이 무성해져 각종 새와 벌레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볼이 통통한 아이들이 돌아오자 공원은 놀이터가 되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미끄럼틀과 시소를 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웃음이 주방 창문으로 남실남실 넘어 들어왔다. 그런 날이면 나는 훌라후프 없이 빈손으로 그 공원을 찾았다. 넘어지고도 울지 않는 어린아이를 보며 대견해하다 숙소로 돌아왔다. 


오래 미워했었다. 작열하는 태양에 그을린 것들을. 메마른 땅과 잎사귀 하나 없이 가시 돋친 선인장 같은 것들을. 힘든 건 나뿐이 아니라고,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도 있다고. 자칫 옮길까 내색하지 않고 버티다 결국 안으로 곪아버린 것들과 나를 구분하기 점차 어려워졌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하는 사람이 나뿐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는 위로가 되지 않자,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떠도는 길을 택한 부담은 가중되었다. 물병 하나 들고 끝없는 사막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돌아온 한국에서도 증상은 계속되었다. 몸도 마음도 고단했다. 단지 쉬고 싶을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난 그 공원을 찾았다. 훌라후프만을 돌리는 게 지겨운 날이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았다. 공원 한편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오늘은 몇 명의 배달 또는 택시 기사들이 화장실 문턱을 드나드는지 세어보거나, 넘어졌는데도 울지 않던 아이의 둥근 이마를 덮던 나무 그늘이 얼마나 촘촘해질지 고개를 들어 가늠해보곤 했다. 그럼 흐르던 눈물은 멈췄다. 잠잠한 풀벌레 소리와 점점 더 높은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넝쿨과 밤하늘을 살랑대는 연둣빛 우듬지 같은 것들이 풀밭의 풀물처럼 천천히 스며들며 나를 위로했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UT Austin)의 오래된 오크나무들. (사진=박인정)



흠뻑 젖을까 부랴부랴 일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미국이다. 이번엔 텍사스다. 오크나무의 검고 우람한 둥치 아래, 더워서 입을 벌린 까맣고 날렵한 새 한 마리가 총총 지나가자 겉흙에 섞인 코르크 껍질이 튀어 오른다. 사막을 떠나 첫봄을 보내고 나서야 안다. 투손에 살았던 지난 5년, 내가 진정 견디지 못한 건 그곳이 아닌 그때의 나라는 사실을. 잃은 것을 꾸준히 되뇌고, 얻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을 끄집어내 하루를 허비하던, 가장 힘들 때 가장 흔하게 보이던 풍경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던 나 자신을 말이다.


늦었지만 사과를 전하고 싶다. 한겨울이면 소나무 군락지로 이뤄진 산꼭대기에 함박눈이 내리는 백두산보다 높은 레몬산에게, 사람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는 흰 꼬리 아기사슴이 뛰노는 투마목 언덕에게, 잎사귀를 대신한 푸르고 매끈한 몸통으로 광합성 하며 어린 선인장들에는 든든한 그늘이 되어주는 팔로 베르데 나무에게. 방목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이곳의 푸른 초원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연남동의 작은 공원이 그리워진다. 잊었던 봄을 맞이하는 법을 알려준, 별것 아닌 것들로 특별히 내 눈을 시리게 하던.  


느티어린이공원. 그게 그 공원의 이름이다.



영월매일에 동시연재 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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