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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Oct 31. 2022

휴스턴, 여기에도 문제가 있군요 (1)

자유의 여신상보다 큰 로켓을 13번 쏘아 올린 이야기.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지구를 떠나 달로 향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제임스 A. 러벨 사령관(James A. Lovell Jr.)이 미국 휴스턴의 나사(NASA) 제어센터에 보고한 내용이다. 


세 번째 달 착륙 우주선이었던 아폴로 13호에 탑승한 세 명의 승무원은 돌연 우주선 전체를 울리는 엄청난 폭발음을 들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테마 음악을 배경으로 TV 생방송을 무사히 끝마치고 궤도선인 오디세이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우주의 평균 온도인 영하 270.4℃의 극저온에 층층이 침전되어버린 산소와 수소를 휘젓는 일상적인 임무를 마치고 난 직후였다. 지구로부터 약 32만 킬로 떨어진 우주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역사적인 교신을 오고 간 제어센터가 있는 휴스턴의 스페이스센터(Space Center Houston)에 와 있다. 텍사스주의 대표 관광지이자, 로켓 통제 센터를 비롯한 나사의 실제 연구기관이 속해 있는 곳이다. 


주말이라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다양한 국적의 세계인들이 우주를 사랑하는 하나같은 마음으로 선뜻 입장료 29.95달러를 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물론 아내와 아이들은 30불짜리 우주여행을 보내버리고, 쓰고 버린 일회용 식기들이 남은 둥그런 테이블 위에 타블렛을 올려놓고 이어폰을 낀 채로 자유시간을 만끽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말이다.


(스페이스센터 휴스턴 내부 전경. 출처=박인정)


나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스페이스센터는 규모가 대단하다. 세대별 우주 장비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체험은 물론이고 헬멧 유리에 금박을 입힌 월면 복, 오랜 세월에 바싹 말라버린 우주 식량, 기다란 호스가 딸린 우주선용 화장실 같은 실제 우주에서 사용된 물품을 전시하고 있다. 1980년 남극에서 발견되었다는 새끼손톱만 한 화성 운석도 직접 만져볼 수 있는데,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대중에게 공개된 화성 운석이라고 한다. 


언제 또 기회가 있을까 싶어 운석을 두 번은 더 만지고 예약한 노면전차를 탑승하기 위해 나는 서둘러 정류장으로 향했다. 나사 연구단지로 향하는 짧은 길 너머에는 뿔이 길고 커다란 물소들이 바닥에 배를 깐 채로 햇볕을 쬐며 한가로이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네모나게 구획된 잔디밭 위를 구애 없이 돌아다니는 사슴들은 노면전차가 방출하는 매연이나 소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풀을 뜯었다. 


우주센터에 물소와 사슴이라니. 생뚱맞지만 정겨운 동물들과 인사하는 동안 내가 탄 노면전차는 풋볼 경기장 규모의 거대한 우주인 트레이너 센터에 도착했다. 미국과 러시아, 일본 같은 우주 선진국들이 만든 국제우주정거장 모듈과 나사의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인 발키리(Valkyrie)를 구경하고 나니 어느덧 나는 새턴 V 로켓(Saturn V) 앞이었다. 


그것은 단 하나의 로켓이었다. 건축물을 제외하고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 중에 이렇게 크고 압도적인 것을 난 이전에 보지 못했다. 무게 3,110톤에다 높이 111미터. 현재까지도 인류를 지구 저 궤도 너머로 운반할 수 있는 유일한 발사체이자 가장 무겁고 거대한 로켓인 새턴 V는 가로로 누워있음에도 우주를 향한 찌를 듯한 위상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다섯 개의 엔진이 달린 새턴 V. 새턴 V의 엔진 역시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단일 엔진 중 가장 큰 출력을 자랑한다. 사진=박인정)


존재감만으로도 대단한 새턴 V가 전시된 우측 벽면에는 아폴로 계획이 시작된 1961년부터 성공하거나 실패했던 프로젝트들이 연대순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새턴 V의 커다란 엔진에서부터 로켓의 꼭짓점까지 역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언제부턴가 이곳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달에 국기를 꽂겠다는 일념과 우주 식민지를 개척하겠다는 사명으로 열심히 합금판을 두드리고 볼트와 나사를 조여 만든 무지막지한 일회용품을 보며 감탄하고 놀라는 데 서서히 지쳐가고 있던 참이었다. 


무려 300만 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진, 자유의 여신상보다 더 크고 무거운 새턴 V를 13번이나 우주에 쏘아 올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불편함이 감동을 뛰어넘었다. 과연 우주의 하늘은 맑을까 싶었다. 기록에 남은 발사체가 이 정도인데, 그렇지 않은 훨씬 더 많은 각종 우주 쓰레기들이 지금도 내 머리 위 궤도를 따라 돌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는 이 모든 차갑고 딱딱한 금속성의 인공물들을 따스하게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NASA의 첫 번째 유인 발사체였던 머큐리 레드스톤(Mercury-Redstone)과 엔진. 사진=박인정)


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시작으로 인류는 프로젝트 성공률과 인간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많은 것들을 우주로 날려 보냈다. 


그렇게 부지런히 쏘아 올린 잘 만든 쓰레기들은 총알보다 8배 빠른 속도로 공전하며 그간 인류가 이룩해놓은 업적과 안위를 위협하고 있다. 0.3mm짜리 페인트 조각은 우주선의 강화유리를 관통하고, 미처 다 연소 되지 못하고 지구로 떨어진 로켓의 엔진 조각은 지나가던 여성의 어깨를 강타하기도 한다. 


얼마나 큰지 소행성으로 착각했던 아폴로 12호의 새턴 V 로켓의 잔해는 40년 주기로 태양과 지구를 왔다 갔다 하며 지금도 추적 대상이다. 2021년 발사에 성공한 로켓 만해도 315대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으니, 우주왕복선이든 인공위성이든 우주로 뭔가를 쏘아 올리는 방법으로 로켓 추진기관이 유일한 현재로선 앞으로 더 많은 로켓이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며 우주로 쏘아지리라는 건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영월매일에서 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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