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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Nov 09. 2022

휴스턴, 여기에도 문제가 있군요 (2)

작은 나사같이 하찮은 노력들이 모여 이 창백한 푸른 점을 푸르게 해.

한 번 쓰고 버리는 우주의 로켓은 마치 지구의 플라스틱 빨대와 다름없다. 고치고 씻어 재사용해야 하는 노고를 덜어주고, 깔끔하게 다음 프로젝트에 착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말이다. 누구도 쓰고 버릴 생각만 하지, 쓰고 가져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주에 대한 호기심과 설거지에 대한 부담감으로 우리의 우주며 지구에 차곡차곡 쌓이는 일회용품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일회용품이 없는 삶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솔직히 나도 빨대 없는 버블티는 마시고 싶지 않다.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요즘, 궤도를 따라 도는 기상위성마저 없다면 태풍이나 토네이도 같은 재난의 예측과 관측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통신위성이 없다면 송전탑의 신호가 닿지 않는 높거나 외진 곳에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그리운 이의 목소리를 듣는 건 꿈도 꾸지 못할 테고 말이다. 여전히 달에는 토끼가 산다고 믿을지 모르고, 설거지하는 시간이 대폭 늘어 금쪽같은 쪽잠 시간이 줄어들 게 자명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버그도 어쩔 땐 종이컵을 쓴다. 안 쓰기엔 너무나 편한 일회용품을 절대로 쓰지 않고 생존하는 건 산업혁명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자는 얘기다. 모르고 쓰고 냅다 버리지 말고, 알고 쓰고 신중히 버리거나 몇 번 더 써 보자는 얘기다.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윤택한 삶을 위한 것이라면, 그 과학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쓰레기가 드리울 어두운 미래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분리수거는 잘하고 계시는가요? 플라스틱과 헝겊으로 만들어진 우주인과 더럭 눈이 마주쳤다. (사진=박인정)



더 쓰일 수 있음에도 버려지는 것들을 일일이 열거하면 내 입만 아프다. GDP가 가장 높은 나라 미국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인구 3억의 거대한 이 나라에선 생산비보다 재활용비가 더 나가는 플라스틱 제품은 그냥 폐기되고, 가정에서 배출된 음식물 쓰레기는 후처리 없이 곧바로 매립지에 매몰된다. 내가 사는 텍사스가 그렇고,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8년 이후 중국이 재활용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며 미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재활용 프로그램을 없앴으며 많은 사설 재활용센터가 문을 닫았다. 그나마 캘리포니아에 몇 곳이 남아있는데, 한 달 동안 모은 플라스틱 공병과 알루미늄 캔을 가져가면 9불 정도를 준다. 유류값이 치솟는 요즘, 차가 없으면 신발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미국에서 재활용센터를 오고 가는 교통비가 더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거기다 자가용을 모느라고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까지 추가된다. 분리수거 하려고 지구의 온난화를 촉진하는 셈이다. 


음식쓰레기는 또 어떠한가. 먹다 남긴 햄버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사과는 부패한다. 그러면서 온실가스를 방출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무분별하게 매립된 음식물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메탄이 미국 내에서 인간에 의해 발생하는 메탄 배출량의 약 14.5%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렇게 발생한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0배 이상 강력한 힘으로 지구의 열기를 가두며 점차 숨통을 조여온다. 


예기치 않은 폭발음이 들렸던 아폴로 13호로 다시 돌아가 보자. 결국 달로 향하고 있던 우주선의 승무원들을 위협했던 것도 산소였다. 타버린 절연체에서 불꽃이 튀는 바람에 산소탱크가 폭발해버린 것이다. 


두 번째 산소 탱크마저 복구하는 데 실패하자 인류 역사상 세 번째로 예정되어 있었던 달 착륙 작전은 세 명의 우주인들을 무사히 생환시키기 위한 작전으로 급변한다. 승무원들은 지구로 돌아갈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5분의 1로 줄어든 배급량과 영하의 온도를 견뎌내야 했다. 달 착륙선은 그들의 구명선이 되었다. 원래 2인용으로 만들어진 달 착륙선 안에서 위험할 정도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치솟자 우주인들은 덕 테이프, 비행 메뉴얼의 표지, 양말 따위로 이산화탄소 제거기를 만들었다. 양말에 걸러진 산소 한 모금에 기대 우주에서의 혹독한 시간을 버텨냈다. 


모두의 염원이 닿았던 걸까. 지구를 떠난 지 143시간이 지난 1970년 4월 17일, 가까스로 태풍을 피한 아폴로 13호는 사모아 섬 근처 태평양에 무사히 착수하는 데 성공한다. 기적적으로 돌아온 우주인 세 명은 지구에 발을 내디디며 폐 속 깊이 신선한 공기를 들이켰다. 창백한 푸른 점의 일원으로 다시 살게 된 것이다.


달 탐사를 재현한 실제 크기의 모형들. 오른쪽 뒤편으로 달그림자로 덮인 푸른 지구가 보인다. (사진=박인정)


우주는 아름답다. 하지만 멀리서 보았을 때나 그렇지, 그곳에 속하게 됐을 땐 전혀 다른 얘기다. 


수십 년 넘게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는 미국 드라마인 스타 트렉의 제임스 커크 선장 역할을 했던 91살의 어느 노배우는 10여 분간의 짧은 우주여행을 마치고 그것이 마치 장례식 같았다며 소회를 밝힌다. 아름다움은 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아래, 우리 모두와 함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아폴로 13호에 탑승한 세 명의 우주인들도 돌아갈 지구가 있었기 때문에 달로 가는 위험한 여정을 택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맑은 공기를 들이켤 수 있다는 당연한 희망이 예기치 않은 사고를 이겨내는 힘이 되어주었다. 


그런 소중한 지구를 지키고자 며칠 전 나는 남편과 함께 24시간 재활용센터를 찾았다. 말이 재활용센터지, 주차장 공터에 재활용품 회수용 컨테이너 몇 개만 덩그러니 놓인 곳이었다.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빈 병이며 캔으로 빵빵해진 봉투를 들고 그곳을 찾았다. 처음이라 허둥대는 우리에게 조언을 주고 간 친절한 신사도 있었다. 


진작 올 걸 그랬다. 이 24시간 재활용센터는 남편의 일터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몹시 가까워 탄소 발자국 대신 내 발자국을 몇 발짝 추가하면 된다. 쓰레기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 욕할 시간에 플라스틱 물병 한 개라도 더 재활용할 걸 후회가 들었다.


푸른 하늘 아래 리사이클 빈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쓰레기통 뒤엔 활짝 핀 해바라기가 고갤 들고 있다. (사진=박인정)


우주를 떠도는 작은 나사 같은 내 노력이 얼마나 이 땅에 득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스스로 만족을 위해 빈 플라스틱병의 띠지를 떼어내고, 아마존 배송 포장지에서 주소 라벨을 오려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작은 나사들이 모이고 모여 자유의 여신상보다 커다란 로켓이 됐듯, 내 미미한 노력이 쌓이고 쌓여 어떻게든 빛을 발하리라 믿는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보상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자원을 아끼려고 몸소 이곳을 찾는 적잖은 지구인들을 보라. 지구를 위해 병뚜껑을 모으고 우유갑을 헹구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서 나는 외롭지 않다. 내가 옳다고 느낀다. 


벌써 밤이다. 나는 청량한 숲이 내다보이는 발코니에 서서 반짝이는 별들이 수 놓인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린다. 지구와 우주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별로 뒤덮인 밤하늘이 최대한 유예하기를 바란다. 30년 후의 내가 우주 쓰레기가 아닌, 별로 가득 찬 밤하늘을 그리워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바라는 것이 많은 밤이다. 빛나는 별이 많아 그래도 감사한 밤이다. 



참고자료:

https://spacecenter.org/ 

https://www.nasa.gov/ 

https://history.nasa.gov/ 

https://www.epa.gov/lmop/basic-information-about-landfill-gas

데이터 저널리스트 Katharina Buchholz에 의해 작성된 ‘The World is Not Enough’ 기사 등 다수. 


영월매일에서 동시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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