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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Nov 22. 2022

보리차가 끓기만을 기다리는 시간

마침내 주전자에서 피리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임계점을 넘었다.


요즘 우리 동네에는 비가 자주 온다.


불과 이주 전 만 해도 기온이 30도까지 오르락내리락했다. 11월 말이 다가오는데 30도라니. 여기가 남반구 호주도 아니고 너무하다 싶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늦가을로 무르익으며 차츰 낙엽이 진다. 도토리가 떨어지고, 그걸 밟는 산책자들과 반려견의 발소리도 잦아진다. 

식탁 없이 지낸 지 어느덧 반년이다.


그깟 식탁이 없다고 살아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수저 놓을 수 있는 곳이 거기만 있는 게 아니고, 반드시 번듯한 밥상이 있어야만 밥알이 넘어가는 사람처럼 지내기엔 나나 남편이나 흘린 밥알을 치우고 얼른 일어나는 게 속 편했다. 일단 밥을 잘 먹는 건 나중의 일이었다. 당장 내년 여름부터 어디에 발붙이고 살지 모르는데 식탁 투정을 부릴 여유는 없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말에 혼쾌히 웃어주셨다. ‘텍사스 르네상스 페스티벌’에서는 중세 시대를 재현한 거리와 그 시절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진=박인정)



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룰도 잘 모르는 미식축구를 미래의 직장 동료들과 함께 보러 갔고,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는 어느 교수님 집에서는 노래방 마이크를 붙들고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부르기를 자처했다. 남편의 최종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발표하느라 다 쉰 목소리로 철 지난 한국 노래를 불러제끼며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주고자 고군분투하는 남편을 위해 나는 직접 만든 잡채에다 참기름을 듬뿍 쳐서 가지고 갔다. 혹시라도 맛이 없을까, 아무 곳에서도 오퍼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다가 양념에 재운 소고기가 퍽 질겨지고 말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자 기다림이 남았다. 남편이 세 번째 인터뷰를 보러 갔던 켄터키에서 사 온 단풍빛 버번을 홀짝이며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한편으로는 아마존 배송 상자를 접어 한쪽 벽에 켜켜이 쌓았다. 새로 구매한 가전제품 설명서는 구매한 순서대로 파일철에 차곡차곡 보관했다. 되도록 여기서 살고 싶었지만, 이사는 정말이지 지긋지긋했지만 가야 한다면 가야 했다. 또다시 짐을 싸거나 팔고 이 땅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종종 밥알이 목에 막혀 안 넘어가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보리차를 끓였다. 깨끗이 거른 생수를 큼직한 주전자에 붓고 불에 올리고선 기다렸다. 바글바글 끓기 시작하다가 기어이 임계점에 이르러 주전자 주둥이에서 피리 소리가 나면 그게 기쁜 소식이었다. 보리가 충분히 우러나올 때까지 뜸을 들였다가 한 잔을 따라 마시면 따스한 기운이 온몸의 마디를 타고 퍼졌다. 힘내라고,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남편의 도시락에 곁들이고 식탁 없는 집에 기꺼이 놀러 와 준 지인들에게도 몇 잔을 나눠주면 보리차 병은 금방 비었다. 


소식은 뜻밖의 손님처럼 찾아왔다. 마침내 결과가 나온 날, 더는 이삿짐을 싸지 않아도 된다는 희소식을 남편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때 나는 내 가슴에서 울리는 피리 소리를 들었다. 도토리가 흩어진 산책로를 따라 남편의 손을 잡고 냅다 달리고 싶어졌다. ‘우리 식탁 사자!’ 아직도 얼떨떨한 남편의 손을 붙잡고 나는 그렇게 외쳤다. 


식탁을 사자고. 멋들어진 테이블 러너와 잔 받침도 사자고. 잘 차린 밥상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올려놓고 오래 눈을 마주 보자고. 이 낯선 땅에서, 그 오랜 기다림과 불안을 용케 버텨 준 너와 나에게 아주 근사하지는 않더라도 제대로 된 한 끼를 선사하자고. 지금까지 버텨준 너와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으니, 오늘만큼은 오글거리는 말들을 부러 나누며 축배의 잔을 들자고. 


그렇게 맞이한 식탁이 이제 여기에 있다. 제일 싼 값에 사서 조립하느라 11월에도 비지땀을 흘렸지만, 더욱 바빠진 남편에게 손을 거들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지만, 더는 좁다란 아일랜드 식탁에 나란히 앉아 수전과 주방세제를 바라보며 식사하지 않아도 돼 우리 부부는 만족한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한 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기쁘다. 


고작 한 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우리와 똑같이 시작한 누구보다 어쩌면 뒤 쳐진 발걸음이다. 어떤 이는 만류하고, 우리조차 확신하지 못한 길이다. 그래서 더 값진 한 걸음이다. 그래서 난 탁본을 뜰 생각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꺼내서 보고, 우리 부부를 오랫동안 응원해준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면 자랑스럽게 내밀 생각으로 말이다. 꾹꾹 삼켜온 그간의 고난과 외로움이 어떻게 이 작고 위대한 한 발짝으로 바뀌었는지 오래오래 되새기며 또 다른 발돋움을 준비해 나가려 한다.  


비 오기 직전 노을과 ‘Decatur’. 이제 여길 우리 마을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사진=박인정)



우리가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된 이곳엔 여전히 비가 온다. 나는 오늘도 보리차를 끓인다. 줄곧 내린 비 덕분에 해갈이 됐는지, 수돗물을 걸러 마시는 생수에서 소금기가 제법 가셨다. 어김없이 울리는 피리 소리에 나는 부랴부랴 주방으로 가서 불을 끈다. 반들반들한 식탁에서 구수한 보리차를 마시며 태평양을 건너오고 있을 내 잔 받침과 테이블 러너를 기다린다. 


늦은 점심을 드는데 오늘도 작은 개미 한 마리가 내 팔뚝을 기어오른다. 어디서인지 자꾸 기어 나오는 개미들을 어떻게 좀 해 달라는 요청에 아파트 관리인에게선 여전히 답이 없다. 나는 메일이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다. 이제 겨울잠을 준비하는지 열 맞춘 개미들의 방문이 점점 뜸해지긴 한다. 내 주방에서 가져간 빵 부스러기와 설탕 덩어리로 겨울을 견디며 또 다른 봄을 준비하겠지. 


이 또한 기다림이다. 기다림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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