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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Dec 09. 2022

베이징 덕을 먹으러 갑시다

나의 세 번째 언어, 음식.

추수를 해 본 적은 없으나 추수를 감사하는 날은 어김없이 돌아와 이번에도 식탁을 풍성하게 채운다. 


앉으면 맞은편 무릎이 닿을 정도로 협소한 우리 집 식탁은 아니고, 정원만 두 개 있는 에밀리와 마이클의 널따란 아일랜드 식탁 위다. 11월 24일 추수감사절 당일, 오후 4시부터 시작된 만찬에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칠면조 구이가 이미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븐 안에선 일부러 그릴 자국을 낸 거대한 햄이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기며 지글지글 소리를 냈다. 바나나 브레드, 펌킨 파이, 피칸 치즈 케이크. 식이섬유는 현저히 덜하고 지방과 탄수화물 위주의 상차림이 추수감사절에 모인 이들의 우애와 군살을 돈독하게 해 주기엔 충분했다.


혹시 반짝이는 명찰에다 양복을 입고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두 명의 젊은 백인 남성을 마주친 적이 있는가? 그런 사람들은 으레 해외선교 중인 모르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전도사들이다. 


우리 부부의 첫 추수감사절은 그 모르몬교인의 집에서였다. 남편의 동기였던 덴튼의 초대로 가게 된 자리였다. 햄버거, 피자로 대표되는 단순하고 기름진 음식들에 지쳐가고 있던 나에게 그날의 만찬은 미국 음식은 건강에 좋지 않고 맛도 형편없다는 내 편견을 깨트리고도 남았다.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고 다산을 장려하는 종교답게 덴튼의 가족은 많은 구성원으로 북적였고, 거실엔 이미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여 있었다. 


비법 레시피로 칠면조 속을 채운 스터핑은 어찌나 맛있던지, 퍽퍽한 칠면조 살과 곁들이지 않고 따로 먹어도 완벽했다. 모르몬교에선 술과 카페인을 금하는 터라 손님에게도 탄산수밖에 내어주지 않았으나 그날의 모든 음식이 맛이 좋았다. 누군 믿고 누군 믿지 말라고 말씀은 하지 않아 더욱 좋은 날이었다.


각종 음식이 차려진 추수감사절의 식탁 (사진=박인정)


가장 이색적인 추수감사절을 꼽는다면 네이선의 집에서다. 야외 수영장에다 바비큐 그릴이 딸린 지극히 미국적인 집의 식탁엔 칠면조 대신 둥근 냄비가 기다란 상에 하나씩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론 건두부와 미역, 각종 고기와 버섯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일명 ‘핫팟 감사절’. 러시아 이민자 3세이자 풋볼선수였던 현직 경영대 교수가 차린 중국식 핫팟은 생각보다 알싸했고,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었다. 


네이선은 직접 김치도 담그곤 했는데, 김장김치가 알맞게 익었다는 기쁜 소식에 누가 수육을 해오고 우린 막걸리를 챙겨갔던 기억이 난다. 190cm는 될 법한 푸른 눈의 사나이가 고무장갑을 낀 채 들통에 꽉꽉 눌러 담은 김치를 나눠주고, 그걸 받아 가려고 줄을 서는 기분이란. ‘기생충’ 영화가 투손에서 개봉했을 때 네이선은 우리 부부에게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날 우리는 한국식 BBQ 집에 들러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네이선은 콩나물무침이 맛있다며 아삭아삭 잘도 먹었다. 김치는 네이선이 담근 게 훨씬 맛있었다.


미국에 살다 보니 요리를 많이 하게 된다. 일단 외식비가 비싸고, 거기다 팁까지 붙으니 뭘 사 먹으려고 해도 쉽게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한식이 그런데, 값도 값이지만 맛이 문제다. 김밥천국에서 기대하는 퀄리티만 돼도 좋겠는데, 여기가 한인이 많은 LA도 아니고, 소와 양이 풀을 뜯고 저 멀리 수평선에선 말머리를 닮은 시추기가 원유를 뽑아내는 텍사스 시골이라 바랄 라야 바랄 수가 없다. 큰맘 먹고 시도한 동네 한식당 순대국밥의 순대가 냉동고 맛이 너무도 강렬해 아무리 들깻가루를 쳐도 쳐낼 수 없는, 별의별 걸 다 얼리고 해동했던 역사를 한데 품은 그 쿰쿰한 맛에 팁까지 치르고 나온 이후로 웬만한 한식은 직접 해 먹기로 했다. 


파이를 만들기도 하고, 핼러윈 조명을 만들기도 하고, 추수감사절 식탁에 장식으로 올리기도 하고. 9월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각양각색의 호박들. (사진=박인정)


음식은 대화의 물꼬를 트이기 좋은 소재다. 가령 여기서 가장 괜찮은 중식당이 어디냐고 중국에서 온 친구에게 물어보면 다섯 마디는 술술 나온다. ‘이 동네는 맛있는 데가 없고, 휴스턴에 가야 괜찮은 곳이 있어. 근데 대부분 광둥식이야. 쓰촨식은 괜찮은 곳이 없는 것 같아.’ 음식 비결을 물어보고, 새로 생긴 식당 정보를 공유하고, 떡볶이나 김밥에 관한 질문에 답하다 보면 어색한 친목 도모의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국적이 다른 사람과 함께 그 나라의 음식을 먹는 건 단순히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존중합니다.’ 또는 ‘당신과 친해지고 싶어요.’라는 의미가 된다. 전혀 모르던 음식이 내 입을 거쳐 내가 아는 맛이 되면 어쩐지 그에 대해서도 더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접점이 생긴 것만 같다.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그래서 특별하고 소중하다. 마치 형태가 다른 언어를 주고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외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살며 느끼는 건 자국에서 자국민으로 사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다. 살코기 없이도 얼마든지 맛깔나게 요리하는 재주가 있는 한국은 또 얼마나 미식의 나라인지. 맛있는 순댓국을 포기하고 여기 와서 사는 걸 후회하지 않지만, 냉동고 냄새나는 순댓국을 억지로 욱여넣으며 ‘그래도 순댓국 먹으니까 좋다’라고 최면을 걸다 실패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건 부럽다. 


맛있고 풍미가 좋은 음식은 손이 많이 간다. 김장김치처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건 에밀리와 마이클이 내어준 한 편의 자리다. 잘 모르는 외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먹으라며 칠면조와 햄을 썰어주고, 배추김치와 총각김치를 담가 나눠주던 따뜻하고 배려 깊은 마음 씀씀이다. 의자를 잡아당겨 먼저 앉으라는 선심들이 아니었으면 구불구불 자갈밭 투성이던 우리 부부의 앞길은 더욱 험준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자리에서 이 글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번 주 토요일에 함께 베이징 덕을 먹으러 가지 않을래?” 


같은 아파트에 살아 친해진 남편의 동료에게 용기를 내어 물어본다. 마이클이 몇 번이고 리필해 준 올드 패션드 칵테일에 힘입어서 말이다. 그는 좋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남편은 벌써 인터넷으로 베이징 덕 먹는 법을 알아본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집에 가서 먹으라고 에밀리와 마이클이 바리바리 싸 주는 음식들은 여전히 따뜻하다. ‘정말 고마워요.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집에 도착한 나는 에밀리에게 그렇게 문자를 보낸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다. 감사를 나누는 날이다.




영월매일에서 동시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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