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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Dec 20. 2022

집이 없거나 서류가 없거나. 우리는 떠도는 중입니다 1

낙타 대신 스쿨버스를 타다. 산타의 요정이 된 유목민.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이해 나는 침대 옆 테이블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기존의 테이블이 너무 낮고 협소해 두고두고 불만인 참이었다. 고심한 끝에 적당한 협탁 하나를 구매했다. 가격은 65불. 원가에서 반절 가까이 할인된 가격이라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배송이었다. 협탁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뜨길래 확인해보니 또다시 엉뚱한 주소로 가 버린 후였다. 여기가 텍사스 시골이라서 그런지, 애리조나 투손에 살았던 때보다 배송이 현저히 느리다. 희한하게 정확도도 떨어지는데, 내 택배가 잘못 배달되곤 하는 마을에 혹시나 해서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을 검색해보기도 했지만 동일한 지명은 나오지 않았다. 인력 부족인지, 전산상 오류인지 알 길이 없다. 워낙 대목이다 보니 택배가 밀려 그러겠거니 짐작할 뿐이다. 문득 창밖을 보니 미소 짓는 로고가 그려진 아마존 물류 전용 밴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 밴을 바라보는 나는 울상이 된다.


흔한 미식축구 경기장. 무려 10만 명이 앉을 수 있는 경기장이 관중들로 꽉 찼다. 델라웨어에 있는 미국에서 가장 큰 아마존 물류 창고는 미식축구장 66개를 합친 크기라고 한다.


2022년 기준 미국엔 총 1,137개의 아마존 물류 창고가 있고, 그 창고 주변엔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한 44개의 캠프장이 있다. 집 대신 차에서 생활하며 유목민처럼 떠도는 그들은 스스로 홈리스(Homeless)가 아닌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부른다. 이들에게는 스쿨버스, 낡은 세단, 트레일러 등 몸 하나 눕힐 수 있다면 상관없다. 추수감사절을 시작으로 블랙 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 연말과 연초까지 이어지는 막대한 배송 수요를 맞추기 위해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그들은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마존 창고에서 열심히 바코드를 스캔하고, 박스를 분류하고 다시 캠프장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유랑부족’, ‘워캠퍼(workamper)’, ‘노마드(Nomad) 노동자’.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많다. 주거시설과 교통수단을 갖춘 차 안에서 생활하는 그들의 삶은 대부분 도로와 캠프장에서 지속된다. 때론 보안이 허술한 월마트나 24시간 편의점 주차장에서도 종종 그들의 바퀴 달린 부동산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사는 텍사스에도 그들을 위한 캠프 사이트가 다섯 군데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어쩌면 내 65달러짜리 협탁도 그들의 손을 거쳐 유목민처럼 떠돌다 잘못된 주소로 배송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2008년 금융 붕괴의 여파로 하루아침에 집과 저금을 잃은 은퇴 세대로 채워지던 아마존 캠프장으로 오랜 경기 침체와 코로나의 영향으로 청년층도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일반 고용시장의 연령대보다는 노마드 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이 현저히 높다. 


젊은이의 활력과 체력을 보완하는 성실함과 끈기로 그들은 하루에 10시간에서 12시간 내내 물밀듯이 들어오는 화물을 나르고, 플라스틱 통이 가득 실린 카트를 끌고 광대한 아마존 창고를 가로지른다. 온갖 관절염과 지친 발에 고통스러워하는 그들을 위해 아마존은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진통제를 파는 자동판매기를 창고마다 설치했다.


노마드 노동자들 상당수가 한때는 번듯한 집과 넉넉한 연금을 보유했던 중산층이다. 집을 잃었을 뿐, 근면한 습관을 잃지 않은 그들의 충성도를 높게 산 아마존은 애리조나의 쿼츠사이트(Quartzsite)같은 유명 캠프장을 적접 찾아가 성수기 때 근무할 워캠퍼를 모집한다.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그들은 플로리다의 사냥꾼 검문소로 멧돼지나 사슴 사체의 무게를 재고, 몬태나의 사탕무 농장으로 무를 뽑고, 텍사스의 슈퍼볼 경기장 구내 매점으로 핫도그를 팔러 떠난다. 바퀴 달린 집을 몰고 일터를 찾아 전국을 누빈다. 


해가 지는 쿼츠사이트 (Quartzsite)의 광경. 원래 이 지역의 이름은 광물 이름을 따서 규암 (Quartzite)였는데, 중간에 s가 들어가 쿼츠사이트가 되어버렸다.


정착하게 되었으니 이제 집을 사서 목돈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냐고 요즘 심심찮게 듣는다. 언제부턴가 집은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이 되었다. 얼마에 사고팔아 이윤을 남기는 투자 같은 게 되어버렸다. 


어디에 소파를 놓아야 볕을 더 잘 받을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어디가 얼마나 집값이 올라가고 내려갈지 추측하며 매물 리스트를 훑고, 말발 좋은 부동산 중개업자를 따라 단열재를 고스란히 내보인 채 먼지를 풀풀 풍기는, 이 순간에도 값이 오르고 있는 뼈대만 세워진 새집들의 문지방을 넘나드는 감정이란 복잡미묘하다. 


다행이라면 아직 집을 살 형편이 안 된다는 거다. 솔직히 올해 구매한 중고차 대출금 절반도 겨우 갚았다. 서울만큼은 아니더라도 여기도 집값은 많이 올랐고, 설령 돈을 빌려 집을 산다고 해도 현재 월세로 지출하는 비용보다 더 많은 돈을 매달 이자로만 내야 한다는 사실은 집이 짐처럼 느껴지게 한다. 


나무 펜스가 둘러싸인 드넓은 뒤뜰과 푸르른 잔디가 깔린 앞뜰은 보기엔 근사하나 벌금을 내지 않게 잘 관리하려면 적잖은 품과 돈이 든다는 사실을 이미 집을 소유한 지인들의 입을 통해 심심찮게 들었다. 욕실 문 하나를 고치는데 예약만 2주를 기다렸단다. 못질을 마음대로 하고, 작은 텃밭과 화단도 꾸밀 수 있는 나만의 집이 생긴다면 그 행복감과 뿌듯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돈이 덜 들고 비교적 관리가 쉬운 이 방 두 칸짜리 월세 아파트가 우리 부부에겐 딱 맞는 집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영월매일에서 동시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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