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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Mar 21. 2023

날지 못하는 새가 가득한 미술관으로 오세요

도자기와 돌멩이, 발밑 아래 스포트라이트

아침 9시 반. 지하의 작품들은 아직 곤히 잠들어 있다. 나는 그들을 깨우고자 계단을 내려간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먼지다. 도자기를 비추는 강렬한 핀 조명은 전시대 유리판 위에 쌓인 먼지를 그보다 먼저 부각한다. 깨끗한 얼굴 위에 화장하듯 먼저 닦아줘야 한층 맑아지는 일이다. 둥근 백자 위에 푸른 코발트로 그린 선비의 때깔이 개운하고, 오묘한 청자 위에 수 놓인 구름들이 물결처럼 흐르게 놔두려면.


나는 먼지떨이를 꺼내 든다. 하도 써서 짓눌리고 더러워진 면을 피해 아직 보송한 면으로 유리 위 먼지를 훑기 시작한다. 이미 오래전 진토로 돌아간 이들이 세상에 남긴 자기와 토기에게 건네는 아침 인사. 밤새 모두 안녕하셨는지요. 네, 그래 보이십니다. 두 마리 쌈닭이 마주 본 운보 김기창의 쌍계화합도에게, 파블로 피카소가 말년에 그린 올빼미에게. 바보새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관람자를 되레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백색 주병 속 검은 새에게. 여긴 새가 많은 미술관이다. 도자기 미술관이다.


(흙으로 철장을 빚고, 유리를 불어 채운 새장. 도예관은 워낙 후미진 곳에 있어 작품을 밖으로 내어놓기만 해도 저렇게 숲 속 동화같이 사진이 찍히는 스폿이 많았다. 사진= 박인정)


미술관에서 먼지떨이를 잡기 전, 먼저 나를 밝힌 건 내 목소리였다. '화가'라는 동요를 좋아했고, 몸 밖으로 소리 내는 걸 좋아했다. 음악 시험 날, 순서가 되어 칠판 앞 단상 위에 서면 나는 관악기가 되었다. 가장 크고 좋은 소릴 내기 위해 콧구멍과 입을 있는 힘껏 벌리곤 했다. 그런 나를 보고 비웃는 녀석도 있었지만, 들숨이 커야 날숨이 크고 소리가 좋다는 걸 알아 개의치 않았다.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를 끄적이던 소심한 아이를 무대로 이끈 건 더 좋은 소리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치기다. 높은 무대 위에 올라 오직 나만을 비추는 조명 가운데 서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관객석에 앉은 군중도, 나를 향한 시선도 지워지고 오직 나와 내 목소리만이 남아 환하고 넓은 빛의 터널을 에워쌌다.


높은 곳을 오르던 용기와 힘으로 지하로 뻗은 계단을 내려가 작품을 보살피는 일은 무대에 서는 것만큼이나 즐겁고 보람찬 일이었다. 내 남다른 목청은 미술관을 찾아온 단체 관람자의 귀를 사로잡는 데 유용했고, 내가 도맡았던 '도슨트'라는 업무도 어쩌면 한 곡의 노래와도 같아 강약을 조절해 기승전결처럼 부르듯이 하면 되는 일이었다. 똑같은 말을 수백 번 읊어도 그걸 대하는 얼굴은 항상 달랐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을 관람하는 것도 남모를 재미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원석을 알리는 삶도 무척 의미 있겠다고.' 해외 출장 내내 미술관 관장님의 비서 역할을 하다 시차 적응도 못 하고 출근하는 바람에 손등에 링거줄을 매단 채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땅은 노랗고 하늘은 새파란 미국 산타페에 모인 각국의 도예가에게 우리나라 옹기를 홍보하는 리플릿을 나눠주고 온 길이었다.


(푸에블로 원주민의 건축 양식인 어도비(Adobe)에서 영감을 얻어 지어진 산타페 공항. 어도비 양식은 식민제국이었던 스페인의 영향을 받아 다양하게 변화되었다. 사진= 박인정)


얼마 안 가 나는 그 길을 다시 걷게 된다. 이번엔 원석 같은 남편의 손을 붙들고 서다.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게 이 사람은 한 곳에 고여 있기에는 무척 아쉬운 사람이었다. 결코 순풍은 아니었지만, 직접 노를 저어서라도 반도를 떠나 더 넓은 무대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다시 밟게 된 기회의 땅 미국에서 나는 오래 벽을 마주 보아야만 했다. 페인트가 군데군데 덩어리 지고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울퉁불퉁한 벽.


종일 학교에서 연구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나는 매일 도시락을 2개씩 쌌다. 나보다 2살이 어린 남편의 어깨는 점차 굽어갔다. 어제보다 더 굽은 어깨가 떠난 자리엔 내가 남았다. 더는 작품도, 스포트라이트도 없이 점점 지쳐가는 마음과 몸뚱이 하나. 그리고 희디흰 모르타르 벽. 오래 쳐다보고 있자니 그건 마치 코티지 치즈처럼 됐다. 인공 눈 스프레이가 뭉친 것이 됐고, 부글거리다 만 거품처럼도 됐다.


주연을 벗어난 삶을 원한 건 나였다. 빛은 오직 남편만을 비추고 나는 몇 걸음 떨어져 있어도 그게 그늘이 아니라고 자만했다. 꽃받침, 책받침, 수저받침. 작품을 받친 전시대의 먼지를 살뜰히 닦아내던 노하우로 남편을 돕고 그 노고도 덜어낼 수 있을 거라는 착각. 대학 문턱은 가본 적도 없는 양가 부모님의 가난하고 잘 모르는 표정과 그간 이룬 것들을 전부 뒤로 하고 유학길을 오른 우리 부부를 향한 우려 섞인 응원과 의아함. 때로는 무시. 그래서 더 말할 수 없던 통곡의 벽 같던 나날. 예전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마침내 볕이 들기 시작하는 요즘 문득 손에 잡히고 걸린다. 불쑥 슬프고 화가 난다.


그래서 나는 돌멩이를 본다. 어느 예술가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다. 돌멩이에 두 눈을 그려 생명을 불어넣은 그는 그림을 그리기 전 먼저 액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길바닥에 떨어진 돌 하나를 주워가지고 와 오래 살펴보았다고 했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돌 중 하나를 작품으로 승화한 건 그런 시선이다. 낮은 곳에 있다 하대하지 않고 무릎을 굽혀 들춰보고 들여다보는 마음. 버섯과 이끼 사이 슬그머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돌멩이의 두 눈을 마주하니 신기하게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오래 묵은 화가 재처럼 가라앉았다.


요즘의 나는 이렇다. 철 지난 것들을 전시대에서 꺼내 수장고에 넣고, 그 자리에 새로운 작품을 세울 준비를 한다. 한때는 커다란 바위였다가 구르고 굴러 마침내 동그래진 돌 하나의 서사를 되새기며 다시금 먼지떨이를 든다. 더럽고 오래된 면을 돌려 가장 깨끗한 면으로 수많은 오늘에 윤을 내다보면 내 모난 마음도 깎이고 무뎌져 내일을 덜 찌를 수 있을 거라고. 더 동그랗게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여전히 주인공을 원하지 않는 나는 그런 미래를 향해 핀 조명의 각도를 맞춘다. 먼지를 터느라 참았던 들숨을 크게 들이켠다. 이제 10시다. 먼지떨이를 내려놓은 나는 명찰을 목에 건다. 문에 달린 벨이 울리고, 누군가 미술관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영월매일에서 동시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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