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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Mar 31. 2023

2023년 봄. 벌써 만 명이다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말은 없다.

작년 10월. 나는 캐나다에 사는 A에게 전화했다.


당시 쓰고 있던 소설을 자문하기 위해서였다. 때마침 A는 학교에 있었고, 학교 밖 벤치에서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고 난 후라고 했다. 연구하느라 바쁜 A에게 양해를 구해 나는 내가 쓴 설정이 고증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려 여러 질문을 던졌다. 언제나 그랬듯 A는 침착하고 성실하게 내 물음에 답해 주었다.


"근데 A, 너 괜찮아?"


해야 할 말을 전부 덜고 나고 나니 꼭 하고 싶었으나 줄곧 망설이던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A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덤덤하게 사건의 정황과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A의 목소리 끝은 울먹임으로 점차 흐려졌다. 같은 북미지만 까마득히 먼 곳에서 나는 전화기를 꼭 붙든 채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우리가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곳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참극에 함께 분노하고 슬퍼할 뿐이었다.


"여보. 저게 무슨 뜻이야?"


처음으로 애리조나 대학 캠퍼스 투어하던 날,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어느 안내판이었다. 'Tobacco free & gun free zone'. 분명 다 아는 영어 단어인데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담배와 총이 자유로운 지역이라는 건가. 눈에 보이는 대로 읽으니 말도 안 되는 말이 됐다. 남편은 그 반대의 뜻이라고 알려주었다. '담배와 총반입 금지 구역.' Free라는 단어가 앞의 명사를 수식해 금지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하늘이 유독 아름다웠던 애리조나 대학교 (University of Arizona). 사진=박인정)


미국에 산 지 꽤 되었으나 미국에서 ‘자유’란 무엇인지 난해할 때가 많다. 연방법이라는 울타리에 속해 있을 뿐, 50개의 주와 14개의 해외 영토마다 독자적인 나라처럼 법이 구축된 미국은 오늘은 안다고 생각해도 내일을 또 모르는 나라다. 어느 주에선 낙태가 불법이라 낙태하려면 다른 주로 넘어가야 하고, 어느 주에선 대마뿐만이 아니라 대마를 넣어 만든 사탕과 젤리를 버젓이 판매하곤 한다.


우리 동네 주류 전문점은 일요일만 되면 문을 닫는다. 그나마 대형마트에서 오전 11시부터 주류 판매를 허용한다. 2021년, 일요일에도 주류를 판매할 수 있게 텍사스 법이 개정된 걸로 아는데,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답게 그 법을 따르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이 있는 것이다.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고 쉬라는 성경의 말씀을 엄격하게 받아들여 술도 팔지 않는 걸까. 비교적 보수적이고 기독교 친화적인 텍사스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자유는 무고한 이의 자유를 앗아가는 무기가 되곤 한다. 총기 소지의 자유가 바로 그렇다. 총구는 취약하고 자기방어 능력이 미흡한 사람을 향해 가장 쉽게 겨눠진다. 2017년 어느 연구에 따르면 미국 내외에서 활동하는 경찰관과 현역 군인 1,144명이 총기로 인해 사망했지만, 어린아이의 수는 그 두 배인 2,462명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흑인 어린아이의 사망률은 백인 아이의 4배를 웃돈다.


남편과 내가 처음 텍사스에 왔을 때 만해도 텍사스의 작은 마을인 유벨데(Uvalde) 라는 지역에서 벌어진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미국 전역이 떠들썩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11살 소녀는 총을 맞아 피를 흘리는 친구의 피를 묻혀 죽은 척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끝까지 아이들을 지키다 사망한 교사의 남편은 아내의 추모비에 헌화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 세 아이를 남겨두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초등학생 18명을 살해하고 경찰의 총에 사살된 이 참극의 주동자는 합법으로 3정의 소총과 총알 375알을 소지하고 있던 18살 소년이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 불과 차로 4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곳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캐나다에 사는 A가 끝끝내 눈물을 보인 이유도 바로 그 총 때문이었다. 교수는 연구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했다. 한 대학원생은 몇 달 전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켜 조교직에서 퇴출당하고 접근 금지당한 피의자가 어떠한 제지 없이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걸 보고 놀라 불을 끄고 숨은 채로 911에 연락했다. 그러나 전화를 끊고 나자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피의자가 쏜 총알의 파편은 당시 현장에 있던 스텝의 무릎에도 튀었다. 표적이 된 교수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A의 담당 교수는 희생당한 교수가 사망하기 불과 1시간 전에 학교 복도에서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평범한 수요일, 많은 사람이 일하고 연구하는 대학교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은 건 순전히 피의자가 단 한 명의 피해자만을 노렸기 때문이었다.


(희생당한 교수의 기념비에 꽃과 편지를 남기는 사람들. 사진= Mamta Popat, Arizona Daily Star)


일주일에 두 번, 남편이 대학의 강단에 서기 위해 집을 나설 때마다 나는 그에게 방탄조끼를 입히고 싶다. 부당한 점수를 줬다며, 조교인 친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대학원생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는 그냥 그가 원하는 대로 점수를 주고 빨리 손을 털라고 했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해가 갈수록 치솟는 총기 사망률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렇게 된다. 2023년 3월, 미국에서 총기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이미 만 명에 도달했고 학교나 대학교에서 일어난 총기사건은 38건에 이른다. 어떤 슬픔과 분노가, 또는 어떤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사지로 몰고 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남편이 다니고 내 친구들이 연구하는 학교가 그 끔찍한 비극의 배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다.


효과음이니까 안심하라고. 차량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도입부에서 나오는 총성을 듣고 놀라 운전대를 잡은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남편에게 나는 말했다.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제목의 유행가 가사가 잔혹하게 들린 지는 오래고, 폭죽 소리나 타이어 펑크 소리에 흠칫하는 것도 이젠 서글플 정도로 익숙하다. 하우스 투어를 갈 때마다 총기를 보관해 놓은 커다란 금고를 마주쳤다는 지인의 증언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총기 사망자가 나오는 텍사스에 내가 살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일깨워 준다. 잠시 한국에 머물며 길 가다가 총 맞을 걱정 없이 사는 지금, 단 하나의 손가락이 단번에 목숨을 앗아간 수많은 뉴스로 범람하는 미국의 삶이 녹록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모든 자유가 절대 이로운 것은 아니라고. 이 시간은 내게 그걸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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