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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Apr 18. 2023

똑똑똑 혼술하러 왔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색은 무엇입니까?

경의선 숲길 끄트머리엔 작은 혼술바가 있다. 혼자 가서 술을 마셔도 되는 바. 재미없는 모임에서 소맥만 홀짝이다 후다닥 도망치듯 나온 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는 아쉽고, 친구를 부르기엔 너무 늦은 시각. 치기인지, 취기인지 내 발은 어느새 전부터 벼르다 용기가 딸려 가 보지 못한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처음 왔어요.’ 지정받은 스툴에 착석하며 나는 그렇게 말했다. 물론 누구도 묻지 않은 질문이었다. 머쓱해진 나는 서둘러 우유가 섞인 칵테일 한 잔을 시켰다. 때마침 똑 떨어진 우유를 사러 나간 바텐더가 한시 빨리 돌아오길 기다리는 동안, 혼술바에 모인 사람들이 나누는 소소한 대화가 내 귓가로 스며들었다.

(홍대에 있는 혼술바는 역시나 많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미술을 전공하는 어느 바텐더는 선 자리에서 쓱쓱 이 그림을 완성했다. 사진=박인정)


‘스몰 토크’란 말 그대로 작고 별것 아닌 주제로 가볍게 나누는 대화다. 오늘의 날씨나 넷플릭스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 따위로 채워지는 스몰 토크는 본격적인 주제로 들어가기 전 분위기를 환기하거나, 잘 모르는 사람과 나누는 어색한 대화의 아교 역할을 하곤 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혼재된 미국에서 스몰 토크는 퍽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이 나라에선 종종 침묵이란 무언의 위협처럼 적용해 의식적으로 입을 열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입을 열어 ‘나는 허리춤에 무기를 숨기고 있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쇼.’라고 말하기엔 좀 그러니 약간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넌지시 확인하는 것이다. 애리조나주 투손에 살던 시절, 인적 없는 등산로에서 우리 부부가 건넨 인사에 선뜻 화답한 카우보이모자 쓴 백인 남성은 평평하고 커다란 바위에 움푹 팬 곳을 가리키며 과거 원주민들이 옥수수 알갱이를 갈아 토르티야 가루를 만드느라 생긴 흔적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진짜 맞는 말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짧게 나눈 유쾌한 대화 덕분에 서부의 총잡이를 닮은 괴한에게 총 맞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마저 등산을 즐길 수 있었다.

적당히 즐기고 누리던 스몰 토크는 미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차 무거운 짐이 되어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난 분명 미국 문화를 좋아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말하는 편인데도 자꾸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파티나 모임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마치 거하게 야근을 마치고 온 사람처럼 사지를 뻗고 드러눕기 일쑤였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에 대해, 좋아하는 소설가의 신작에 대해, 새로 생긴 레스토랑의 메뉴에 대해 전력을 다해 내 주장을 설파하고 돌아온 길이었다.

말 그대로 온 힘이었다. 잘하지 못하는 영어로, 역시나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아는 척을 좀 해야 이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서로가 덜 어색하겠다는 판단 아래 손짓과 표정으로 때우는 대화가 쉬울 리 만무했다.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남편도 강단에 서는 것보다 스몰 토크가 더 어렵다고 하는데 난들 오죽하겠나. 남편과 그의 직장 동료들의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대화엔 낄 수조차 없었고 내키지도 않았다. 이미 한 무더기로 모여 수다 떠는 자리에 낄 강단은 더더욱 없이 어색하게 맥주를 홀짝이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앳된 얼굴의 낯선 사람과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의 아내입니다. 반가워요. 전공이 무엇인가요? 고향은 어디세요? 두유 노 케이 팝?’ 그렇게 나의 스몰 토크 스킬은 점차 안정화되어갔다. 무척 고루해졌다.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은 스몰 토크의 필요성을 감소시킨다. 이번 새해 네이선 교수님 집에서의 파티가 그랬다. 사진=박인정)


“베일리쉬 밀크 나왔습니다.”

기본 안주로 내준 오목한 접시에 담긴 미니 프렛즐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우유를 사러 나갔던 금발의 까까머리 바텐더가 코스터에 받힌 칵테일 잔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잔을 들었다. 내가 아는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조금 긴장이 풀어졌다. 혼술바에 모인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었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온더록스 잔만 들었다 놓는 젊은 여성. 이어폰을 낀 채로 인강을 듣는 대학원생. 어제도 왔고 아마 내일도 올 거 같은 중국인 단골손님 등 천차만별이라 혼술바 새내기인 나는 튀는 축도 아니었다. 여기가 무대라면 나는 단지 여덟 번째로 등장한 ‘손님 8’일 뿐이었다. 어떤 대사도 치지 않아도 되고, 단지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어도 하나 이상한 것 없는. 그러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느새 나는 바에 앉은 몇몇 사람들과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별것 아닌 이야기였다. 클럽에서 댄서로 투잡을 뛴다는 바텐더가 보여준 춤 동영상에 감탄하고, 두꺼운 은반지를 낀 손마디가 돋보이는 일본 락커 스타일의 손님과 함께 일본 팝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고, 현실과 이상의 갈림길에 서서 어디로 갈지 망설이는 꿈 많은 청년의 사연에 귀 기울이며 이따금 술잔을 기울이는 게 다였다. 그러다 깨달았다. 이토록 가볍고 부담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게 무척 오랜만이라는 걸. 누구의 아내가 아닌 완벽한 타인으로 맘 편하고 즐겁게 대화를 나눠 본 지는 훨씬 더 오래되었다는 걸. 손님이 떠나고 비어버린 스툴 하나를 바라보며 나는 상상해보았다. 여전히 미술관에서 일하고, 결혼은 한 적 없고, 고로 미국에서 7년을 버틸 필요가 없었던 젊은 나를 말이다. 코끝이 찡해진 나는 얼음에 옅어진 우유 한 모금을 털어 넣었다. ‘에이, 얻은 만큼 잃은 것도 있는 법이지.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다 비운 잔을 까닥이며 7년 젊은 나는 타박하듯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진정한 스몰토크였다고. 다음 날 아침 남편에게 전화하며 나는 그렇게 말했다. 쓸데없는 얘기를 이토록 쓸 데 있게 할 줄 몰랐다고. 언어와 문화가 통하니 별것 아닌 대화를 나누는데도 무척 재미있었다고, 일부러 테이블이 아닌 바에 앉아서 맥주 한 잔 시켜놓고 주야장천 수다 떠는 미국인들이 이제야 이해된다고. 태평양 건너 미국에 있는 남편은 말없이 웃었다. 다음에 같이 가자는 말에 혼술바인데 둘이 가도 되냐고 남편은 되물었다. 이번엔 내가 웃었다. 그럼 따로 들어가자고. 각자 떨어져 앉아 조금씩 친해져 보자고. 학교 얘기도, 돈 얘기도 말고 어디 한 번 다른 얘기를 꺼내 보자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 기억해?”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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