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울 자리에 먼저 간 이들을 만나다
아침 이슬에 젖은 숲길을 거닐고 있으면 종종 벼루에 먹 가는 냄새가 떠오르곤 한다.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그림을 그리던 나였지만, 결코 붓질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억세고 거친 털의 서예 붓은 심술쟁이 할아버지 수염 같았고, 얇디얇은 화선지 위로 덥석 퍼져나가는 시커먼 먹물은 무섭기까지 했다. 먹은 왜 또 굳이 벼루에 갈아내어 써야 하는지. 붓펜도 있고 굵게 잘 나오는 매직펜도 있는데 글자야 보기 좋고 읽기 쉽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유년 시절, 돌처럼 무거운 벼루와 이번에도 샐 것이 자명한 먹물통을 책가방에 집어넣으며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곤 했다.
먹을 만들던 곳이라 ‘먹골’이라 이름 지어진 서울 중랑구 봉화산 기슭 작은 고을엔 최 별감이라는 환관이 살았다. 그는 성종의 최측근으로 평생을 성안에서 일하다 은퇴해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최 별감은 늙고 오갈 데 없는 환관들을 불러들여 먹골에 작은 촌락을 이루어 살았다. 먹먹하고 아무런 미래가 없어 ‘먹골’이라고. 궁에서 왕을 보필하는 명예로운 삶을 살았지만, 단 한 번도 혈육을 안아보지 못한 채 쓸쓸히 삶을 마감해야 하는 고자의 마을을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먹골에서 태어나 봉화산 중턱에 세워진 중학교를 나온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일이다.
대체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건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며 나는 의아했다. 만개했던 아까시꽃은 진작 흐드러졌지만, 나뭇잎 사이로 여전히 진한 잔향이 맡아지는 6월 초였다. 그곳은 봉화산만큼이나 아까시나무로 빼곡한 도봉구 초안산이었다. 동쪽에는 중랑천이 흐르고, 서쪽에는 우인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길터인 초안산에는 1,000기가 넘는 묘지들로 가득했다. 높게 자란 수풀 곳곳엔 주인 모를 묘비와 향로석이 흩어져 있었고, 수 세기 동안 깎이고 밟힌 봉분들은 언뜻 보아 무덤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먹골의 환관들을 알게 된 건 아까시꽃이 아닌 장미 덕분이다. 몇 년 전, 서울장미축제를 맞아 중랑천을 따라 피어난 갖가지 장미를 감상하며 천변을 지나는데 중랑구의 유래와 역사를 알리는 입간판에 적힌 환관의 역사가 나를 사로잡았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살면서 나는 종종 봉화산 아래 모여 살던 먹먹한 남자들을 떠올렸다. 제가 낙마했다는 걸 적지 말라는 왕의 어명마저 기록될 정도로 상세하고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초안산은 조선시대 환관들이 묻힌 곳이었다. 이제는 ‘초안산 분묘군’이라고도 불리는 그 곳은 버려진 공동묘지나 다름없었다. 두 손을 포개고 꼿꼿이 선 문인석은 머리가 잘려 없었고, 홀로 남은 상석 받침의 긁히고 깨진 틈엔 푸른 이끼가 돋아나고 있었다. 누군가 시멘트로 붙여 놓은 머리로 마주 보고 선 문인석 한 쌍 아래 버려진 사탕 껍질을 주워 드는데 어디선가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의 열띤 함성이 들려왔다. 잡초가 자라지 않는 잣나무 군락 옆으로는 탐방 온 아이들이 손바닥 위에 무언갈 올려놓고 숲해설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오래 전 방문했던 미국의 툼스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툼스톤(Tombstone). 말 그대로 ‘묘석’이라는 뜻의 툼스톤은 ‘OK 목장의 결투’라는 서부극으로 유명성을 떨쳤던 애리조나 주에 위치한 옛 은광 마을이다. 미국의 인사동 쯤으로 생각하고 찾아간 툼스톤은 생각보다 황량했고 스산했다. 서부 개척 시절, 술과 성을 파는 살롱이었다가 이제는 기념품 가게가 된 단층짜리 건물들은 그럴싸한 2층짜리 건물로 위장한 채로 빛 바래져가고 있었고, 중심가인 앨런 거리엔 짓이겨진 말똥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벽돌로 지어진 법원 건물만이 그나마 옛날의 위상을 보전하고 있었는데, 골드 러쉬 시절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무뢰한 총잡이들을 처단하는 데 쓰였다던 교수대에 걸린 올가미가 바람도 불지 않는데 마치 추처럼 흔들렸다. 그게 꼭 교수형 당한 유령이 장난질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다 들른 기념품 샵 뒤뜰에 마련된 부츠힐 묘지(Boothill Graveyard)엔 100여년 전 명예를 건 결투를 치르다 죽은 형제가 나란히 돌무덤에 묻혀 있었다. 부츠를 신은 채로 죽은 남자들이 묻혀 그런 이름이 되었다는 전망 좋은 묘지엔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휴가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인적은 드물고 무덤으로 가득한 툼스톤은 거주민이나 관광객보단 오래전 죽은 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죽음은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금까지 발자취를 되짚고, 과연 삶이란 무엇인지 거듭 고민하게 만든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시 아이를 낳는 벅찬 미래를 누릴 수 있다한들 결국 그 끝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예정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오래된 죽음을 발굴하며 의연해지는 연습을 한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얻고자 비문을 탁본하듯 옛 문장들을 수집한다. 직접 몸으로, 또는 머릿속 화자로 나는 오늘도 무덤으로 가득한 산과 마을을 배회한다. 어쩌면 이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환관과 부츠 신은 자들의 잊힌 사연들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내 오늘을 소용한다. 내일을 살아갈 또 하나의 이유가 그렇게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