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단짜리 케이크는 때려치우기로 한다.
사소한 것들도 야금야금 걷다 보면 어떤 형태를 가진다. 나는 여태까지 휘발되게 놔두던 것들을 이제 모으도록 한다. 잠시나마 기쁘고 즐겁고 위안이 되던. 그러나 별 볼일 없다고 여겨 미련 없이 날려 보내던 그 소중한 것들을.
첫 번째는 벌써 잊어버렸고, 두 번째 행복했던 순간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셨을 때다. 자주 가는 커피집이 2주년을 맞이해 50프로 할인 행사를 하고 있어 4500원짜리 음료를 반값에 살 수 있었다. 30분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 받은 아인슈페너-그 낯선 이름만큼이나 멀고 고급지게 느껴진- 는 달았고 생각보다 덜 시원했다. 35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얼음을 씹어먹어도 성치 않았을 테다. 그러나 넉넉한 소파에 기대 커피를 홀짝이며 손가락으로 전자책을 눌러 넘기는 나는 분명 행복했다.
입으로만 했던 말들이 있다. ‘소확행'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때도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온전히 받이 드리지 못한 채 고개만 주억거렸다. 나에겐 행복이란 이뤄야 하는 어떤 목적 같다. 5단짜리 케이크 같아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없다. 겨우 1단짜리 케이크를 받고도 흐뭇하게 웃는 사람들이 난 우습기도 부럽기도 해서 아예 케이크를 등한시한 적도 있다. 불행하지는 않다고. 케이크로 얻어맞은 적은 별로 없으니 최악은 면했다고 중얼거리며 네모난 케이크 상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애써 무시하는 삶. 언제나 빈손의 나는 그 높고도 먼 N단짜리 행복을 동경하기만 한다.
나라고 케이크 맛을 모를 리 없다. 분명히 달고 부드럽고 어쩔 땐 상큼할 그 맛을 나 역시 원한다. 반값짜리 커피 한 잔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그 행복이 얕다고 또는 커피를 홀짝이는 단 몇 초뿐이라고 해서 소홀히 다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귀하다. 날은 덥고 글은 안 써지고 검은색, 흰색, 심지어 수건이 제멋대로 섞인 빨래가 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 속에 반짝 찾아와 준 그 폭죽 같은 순간을 가슴속에 품고 후다닥 타자를 치다 보면 나는 서서히 울렁이는 파도처럼 된다. 조심스럽게 받아 적고 읊어보는 것들이 조금씩 내 것이 된다.
며칠 전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어 울었고, 어제는 새로이 달력을 샀다. 아마 나는 계속 울고 매해마다 달력을 사서 읽은 책과 문학 공모전 날짜와 칼럼 마감일 따위를 적어 넣을 테다. 이제야 사서 칸칸이 채우기 시작하는 8월은 나에게 새 시작을 알리는 첫 달이다. 더는 N단짜리 케이크 진열대를 우러러보는 건 그만뒀으니 그 자리엔 이제 다른 것들로 채워진다. 나는 낮고 후비진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잘 보이지 않아 모르고 지나친 것들과 몰라서 잘 보지 않은 것들에게로 시선을 낮춘다. 타자를 두드리기에 아무 문제가 없는 열 손가락에 감사하고, 못난 글을 고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나를 격려하고 지지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단을 헤아릴 수 없는 케이크를 품에 안는다.
진지한 취미에서 느슨한 직업으로. 나는 좋은 글쓴이가 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