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도 모으면 선이다.
"그거 들고 가시게요?"
피티 쌤이 말한다. 네. 집에 가져가려고요. 농담으로 맞받아치며 나는 아령을 쥔 손아귀에서 힘을 뺀다. 속이 쓰리다. 방 2칸짜리 월세방이 있는 미국 텍사스를 떠나 잠시 한국에 살며 틈틈이 운동 레슨을 받은 지 여러 날이 흘렀지만, 내 몸은 여전히 적절한 곳에 힘을 쓰긴커녕, 손목 힘줄이 돋아날 만큼 아령만 세게 쥐곤 한다.
건강 관리는 항상 중요하고 고국을 떠나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에서 유명한 건 여럿이겠지만 6년여간 그 나라의 이곳저곳을 살았던 내게 체감되는 건 질 좋은 스테이크, 팁 문화, 미친 의료비 정도다. 스테이크를 포기하면 팁은 내지 않아도 되겠지만, 건강이나 체력은 뭘 포기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서 난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 P.T (Personal Training)를 받기로 했다. 삐뚜름한 자세로 글을 쓰다 얻은 요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말이다.
전문가의 힘찬 구령에 맞춰 무거운 운동기구를 들었다 놓았다 하다 보면 나는 단순해진다. 올바른 자세로 근육을 수축하고 이완하는 데 집중하느라 딴생각은 하나 안 들고, 근육 섬유 다발이 모여 이루어진 특정 부위에 말 그대로 온 힘을 쓰느라 이를 악다물 뿐이다. 안간힘을 쓴 만큼 오롯이 얻어낼 수 있는 게 살면서 몇이나 되는가. 당장 이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건 지나친 탄수화물 섭취로 아래 뱃살을 축적한 것 빼고는 딱히 없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스모는 점 하나에 불과해. 점을 선으로 만들고 싶다면 노력하라고."
<리키시>라는 일본 드라마에서 최고의 스모 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주인공 엔오에게 선배 엔야는 이런 말을 한다. 최대한 빨리 정점에 오르고자 엔오는 요령을 피우고 무작정 들이대지만, 그러한 노력은 먹으로 찍은 흐린 점이 물에 풀어지듯 무용할 뿐이다. 큰 상처까지 입으며 만만하게 여겼던 스모에 트라우마를 얻게 된 엔오는 엔야의 '점에서 선이 되어라'라는 조언과 집중 멘토링에 기본기부터 충실히 다잡으며 재기를 꾀한다. 커다란 점 같은 도효(土俵) 위, 가장 두려워한 자와 정면으로 맞서며 선으로 향한 엔오의 여정이 시작된다.
지인이 크로스핏 센터를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방문한 적이 있다. 때마침 회원들끼리 운동회를 하는 날이었다. 열심히 무거운 타이어를 굴리고, 굵은 밧줄을 붙잡고 위아래로 흔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나는 테이블 앞에 앉아 으적으적 과자를 씹어먹었다. 시원한 음료를 빨아 마시며 '아. 진짜 힘들겠다.' 중얼거리기도 했다. 말뿐인 공감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실제로 부딪쳐 이게 정말 힘들다는 걸 몸소 깨닫는 것과 탁상 위 동조는 천지 차이다. 안다고 생각하고 살다가 직접 아령을 들고 근육을 조이다가 다시금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 나란 사람은 또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구나.
미국을 잘 안다고, 남편을 잘 안다고, 네가 얼마나 힘든지 너무나도 잘 안다고. 막연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믿음과 성급한 단정은 점처럼 나를 둘러싸 그 밖의 것을 돌아보는 힘을 앗아간다. 3킬로짜리 아령을 드는 요령조차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스모나 P.T나 글쓰기나, 더 나아가 인생이란 어쩌면 점박이 투성이라 자꾸 끊기고 맥없이 처지는 걸 수도 있다. 학연이나 지연 같은 확실한 끈이 없어 절절매기도 하고, 너무 커져 버려 싱크홀처럼 된 점에 풍덩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최고의 스모 선수가 되고 싶었던 엔오가 바라는 것과 내가 바라는 것은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별것. 천운이나 천재가 아니고선 그 별것이 되기 위해 아주 오래 진부하고 혹독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쫓게 되는 건 곧바로 도파민이 터지는 즉각적인 성취나 보상이다. 가장 쉽게 선을 그릴 때는 그 점점이 박힌 자극에서 또 다른 자극으로 향할 때다. 끊임없이 숏폼 스크롤을 내리느라 분주한 내 오른손 검지가 그 증인이다.
꾸준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그래도 틈틈이 아령을 들고, 근면히 읽고 쓰다 보면 점차 점에서 선으로 갈지 모르겠다. 저 멀리 수평선처럼 아득하지 않고, 언제부턴가 내 팔뚝에 안착하기 시작한 근육처럼 든든히 나를 지탱하는 힘으로 말이다. 무수한 점 같은 노력이 드문드문 점선이 되고 그게 마침내 하나의 선으로 흐를 때까지. 어색한 끊김이 없이 코어 잡힌 사람이 되고자, 또한 그런 글을 쓰고자 나는 오늘도 아령을 들고 타자를 두드린다.
운동하러 오면 기분이 훨씬 나아진다고. 글쓰기보다 운동이 더 쉬운 것 같다고. 이 말을 국가대표 출신 트레이너 선생님 앞에서 내뱉은 건 중대한 실수다. 고작 3킬로짜리 아령을 들고 버티느라 사시나무처럼 파들거리는 두 팔을 지탱하며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운동법만 알려주면 되는데, 말 많고 생각 많은 회원을 만나 별의별 얘기까지 들어줘야 하는 피티 쌤의 은근한 복수인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한 세트가 끝났다. 나는 아령을 붙든 손에서 힘을 푼다. 이걸 집에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잘해야겠다는 부담과 욕심을 내려놓고 숨을 가다듬는다. 통창 밖으로 커다란 손바닥을 닮은 플라타너스의 얄따란 이파리가 햇살을 투과한다. 간만에 갠 하늘에 뜬 뭉게구름의 경계선이 누가 가위로 오린 것처럼 뚜렷하다.
영월매일에서 연재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