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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Nov 30. 2023

냉담한 직선 위 갓 튀긴 빵에 대하여

피자 조각처럼 나뉜 대륙과 전통이 되어버린 전쟁의 빵.


만약에 당신이 미국의 여러 주를 한 번에 갈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여행을 계획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나바호 원주민 보호구역에 있는 포 코너스 모뉴먼트다. 그곳은 모래 알갱이가 섞인 바람이 부는 콜로라도 고원에 있다. 4개의 주기와 4개의 부족 깃발이 나부끼는 그곳의 땅엔 2미터 남짓한 넓이의 청동으로 만든 디스크가 박혀 있다. 아쉽게도 불시착한 UFO는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납작한 디스크 위에 선다면 당신은 애리조나, 콜로라도, 뉴멕시코, 유타 총 4개의 주에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포 코너스, 다른 말로 사합점이라 불리는 마치 4인분 피자처럼 배분된 아날로그 텔레포트 지점을 만든 이들은 미국 영토의 9분의 1에 달하는 남서부 지역을 제멋대로 나눈 19세기 개척 시대의 지배자들이다. 


포 코너스 위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사진= trekers


미국은 거대한 땅이다. 미국의 50개 주 중 하나이자 알래스카 다음으로 큰 텍사스는 그 크기가 남한의 7배에 이른다. ‘텍사스 사이즈’는 양이 많거나 커다란 것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텍사스는 나와 남편이 1년 전 새로이 터전을 잡은 곳이기도 하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런지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고, 시차도 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땅덩어리를 나누는 건 수많은 직선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 강과 산맥을 따라 오밀조밀하게 나뉘던 영토들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서부터 각진 형태로 성의 없이 나뉘기 시작한다. 


새로운 터전에서 성공을 꿈꾸는 이민자들이 빠르게 서쪽으로 확장하기 시작하며, 동시에 원주민들로부터 뺏은 방대한 영토를 신속히 나누고 쉽게 관리하고자 지배자들은 지도에 직선을 긋는 식으로 땅을 분할했다. 치리카와족, 히카리아족, 리판족, 아파치족 등 수 천년 넘게 원래 이 땅에 살던 이들의 문화나 풍습과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그 냉담한 직선들 아래 묻혔다. 전투에서 숨진 추장의 이름이나 원주민 말로 이름 지어진 정복자들의 마을은 나날이 번창해 성조기에 더 많은 별들이 새겨지는 데 한몫했다. 


한때 추신수 선수가 뛰었던 클리블랜드 야구팀의 원래 이름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였다. 붉은 얼굴에 익살스러운 표정의 '와후'라고 이름 붙인 인디언 추장이 그 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뼈 아픈 자신들의 과거를 희화화하는 그들의 로고를 교체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2016년에는 클리블랜드 야구팀이 인디언 추장이 그려진 유니폼을 입고 토론토에서 경기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송을 캐나다 원주민 출신 운동가가 법원에 내기도 했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 마침내 2019년, 70년 넘게 사용되었던 인디언 추장 로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름도 완전히 바뀌어 이제는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라고 불린다.


용맹스럽고 전투적인 네이티브 아메리칸 이미지에서 착안한 심볼이나 팀명에 관한 논란은 지금도 야구뿐만이 아니라 미국 전역의 다양한 스포츠팀과 학교를 둘러싸고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 여전히 잔디가 잘 깎인 풋볼 경기장에는 인디언 얼굴이 그려진 곳이 있고, '한 번 추장은 영원한 추장'이라며 깃털 머리 장식을 한 족장의 옆얼굴이 그려진 학교 로고를 절대 바꾸지 않겠다는 뉴욕의 고등학교도 있다. 2022년 3월, 아메리카 인디언 전국 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미국의 133개 학교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테마로 마스코트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미식축구팀의 이름이자 배움의 터전인 학교의 상징이 될 만큼 위풍당당한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현실은 쓸쓸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땅에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대대손손 뿌리내리고 살던 기후가 온화하고 토질이 비옥한 모든 지역에서 밀려난 그들은 미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자살률과 알코올 의존증, 아동 비만율에 허덕이며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네 개의 주가 맞닿는 포 코너스 기념비 주변 천막 아래 관광객들에게 수제 장신구와 나바호 원주민의 전통 음식인 튀김 빵을 팔고 있다. 


튀김 빵의 별명은 ‘다이 브레드(Die Bread)’다. 지방 함량이 높고 영양가는 거의 없는 튀김 빵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만성 질환인 당뇨병과 비만을 유발한다. 


이렇게 팔아서 세금은 어느 주에 내느냐는 한 관광객의 질문에 나바호 보호구역에 사는 원주민은 세금은 자치국에 낼 뿐, 미국의 어느 주에도 내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 답변이 맘에 들지 않는지 질문을 던진 백인의 중년 남성은 ‘흠’하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낸다. 출출해진 그는 튀김 빵을 파는 푸드 트럭으로 발을 옮긴다.


개척자들에게 추방당해 뉴멕시코까지 300마일이나 되는 긴 여정을 떠나야 했던 나바호 원주민들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먹었던 던 그 빵은 이제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치즈나 소고기가 얹어져 단돈 7달러에 팔린다. 배에 기름칠 한 그는 이제 돌아갈 채비를 한다. 건조한 모래바람이 불지 않는 안락한 곳으로, 어쩌면 빵과 장신구를 파는 이들의 잃어버린 터전이었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영월매일에서 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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