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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Jan 20. 2024

덫이 된 돛을 달고 닻을 내리는 밤

열네 번의 우물우물-여섯 번째 긷기


구깃구깃한 마음을 펼치느라 용을 쓰는 이런 밤이면 구김살 없이 평탄한 삶은 어땠을까 상상한다. 마음에 고인 게 없어 그림이나 글을 그리고 쓰지 않아도 살아지는 하루하루가 쌓여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 같은 삶. 아이러니하게도 결핍은 쓰러트린 힘으로 날 다시 일으켜 세웠다. 마음의 돛을 항상 팽팽하게 조여와 어떤 풍랑에도 견딜 수 있는 기둥이 되어주었다.



언제나 행복은 멀고 불행은 가깝다. 어떤 대단한 파라다이스를 찾겠다고 당장 주어진 행복은 등한시하고 달려온 적이 부지기수다. 언제 다시 역경이 닥쳐올까, 순풍에도 차마 돛에서 손을 내려놓지 못하고 벌써 불안한 내 속은 여전히 골처럼 파여 바람이 불 때마다 휭휭 소리를 낸다.


언제쯤 돛에서 손을 내려놓고 한숨 돌릴 수 있을까. 더 먼바다를 향해 설렌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오늘도 알지 못하고 나는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 가까스로 잠을 청한다. 닫힌 그의 눈꺼풀에 담긴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니마 닻을 내린다.


#무해함일기 #C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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