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집만큼은 ‘매직’스러웠던 너와 함께.
내 첫 웹소설은 인터넷 없는 방구석에서 한쪽 다리엔 깁스를 한 채로 탄생했다.
하루 종일 방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 심정이란... 외출은 통원이 유일했고, 허벅지까지 통깁스를 한 터라 출근도 할 수 없었다.
그 방은 내 방이 아닌 회사에 딸린 직원 숙소였다. 부모님과 동생 둘이 기거하던 방 두 칸짜리 비좁은 우리 집에 내가 발 붙일 자리는 없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똑같이 생긴 그 집 화장실 계단은 몹시 가팔라 목발을 짚은 채 혼자선 내려올 수도 없었다.
오갈 데 없는 내 사정을 접하게 된 관장님은 금이 간 내 왼쪽 무릎뼈가 붙는 동안 직원 아파트에서 쉬며 몸조리해도 된다고 하셨다. 무급인 조건이었지만, 권고사직을 당해 밥줄이 끊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몸을 회복하는 한 달 내내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회사 동료들이 출퇴근하는 소릴 들으며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책을 읽거나 핸드폰 스크롤을 내리는 것도 며칠이지, 싱글 침대 사이즈로 급 축소된 나의 세계는 금방 따분해졌다.
더는 독방살이를 참을 수 없을 때쯤 문득 보게 된 것이다. 삼성 매직 스테이션, 내 오래된 데스크톱을.
번개 때문에 두 번이나 전원이 나가고, 잦은 이사에도 끄덕 없이 버텨준 크고 무겁지만 멧집만큼은 매직스러운 컴퓨터였다. 그러나 인터넷이 없는 숙소에선 아무 기능 없는 오브제나 다름없는. 나는 침대 위를 기어 그 컴퓨터로 향했다. 석고붕대를 둘둘 감은 내 다리 위에 키보드를 올리곤, 커서가 깜박이는 희디흰 여백을 펼쳤다.
어릴 적, 나는 억울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책을 펴 들곤 했다. 어린 두 동생이 딸린 맏이로서, 아픈 엄마와 바쁜 아빠 대신 어른의 역할마저 감내해야 했던 내게 동화나 소설책은 읽어야 하는 교재나 숙제이기 전에 펼치기만 하면 도망칠 수 있는 신속한 도피처였다.
이번엔 그 도피처를 한 번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하자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후딱 갔다. 다친 다리가 다 나을 즘엔 초고가 완성되었다.
몇 번의 퇴고를 거치는 동안,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웹소설을 연재했던 플랫폼에서 출판 제의를 받아 전자책도 내게 되었다. 출간되는 웹소설 권수가 늘어날수록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남편의 도시락 반찬 개수도 늘어났다.
첫 임신이자 유산을 한 힘겨운 시기에도 난 키보드를 두들기곤 했다. 내가 만든 가상의 세계에 뼈를 덧대고 살을 붙여나가며 내가 발붙이고 사는 세계를 버틸 힘을 얻었다. 소설 속 캐릭터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내 가쁜 숨도 가라앉혔다.
그러자 어느 순간 ‘이야기’란 단순한 도피처가 아닌, 힘들 때마다 내가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목발 같은 존재가 되었다. 글을 쓰고 고치며 나는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었고, 결국엔 지금의 딸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아가. 부디 너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소녀로 자라나기를. 이제 막 100일이 넘은 아기의 잠든 눈꺼풀을 바라보며 나는 속삭인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엮는 날을 상상할 수 있는 지금이 여전히 꿈처럼 느껴진다.
어느새 아이가 눈을 뜬다. 갓 엄마가 된 내겐 여전히 크나큰 아이라는 세계가 또다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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