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체」

박범신, 『촐라체』 (푸른숲, 2002)

by 도도히

CHOLATSE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서남쪽 17㎞, 남체 바자르에서 14㎞ 지점에 위치한 6440m의 봉우리다.세계 클라이머들이 오르기를 꿈꾸는 빙벽이며, 작가 박범신은 그곳을 “진선미(眞善美)를 모두 갖춘 초월적 아름다움”이라 표현했다.


그는 글쓰기에 대한 열망과 삶의 유한성에 대한 반항심 사이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떠돌던 중, 2005년 봄 그 ‘촐라체’를 만났다고 고백한다.


이 작품은 실제로 산악인 박정헌, 최강식의 촐라체 조난과 생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작가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삶과 죽음, 구원과 초월의 문제를 세 인물의 시선을 통해 탐구한다.


등반대는 배다른 형제 박상민과 하영교, 그리고 베이스캠프를 지키는 정선생이다. 정선생은 한때 소설가로서 삶을 잘 꾸려가려 했으나, 젖먹이 아이를 떠안은 채 인생이 어긋난 인물이다. 그 아들 현우는 고등학생이 되어 머리를 깎고 산으로 향하며 “그리워서요.”라는 말을 남긴다. 이 한마디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다.


정선생에게, 그리고 인간 모두에게 ‘그리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결핍을 자각하게 하는 영혼의 울림이다. 그리움이란 어쩌면 외로움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외로울 때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간절히 그리워한다. 나 또한 이 소설을 읽으며, 나에게 있어서 ‘그리움’의 대상은 무엇인지 스스로 묻게 된다. 사랑일 수도, 인정이나 만족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솔직한 고백이 아닐까.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죄와 상처를 안고 촐라체를 향한다. 누구는 감옥을 다녀왔고, 누구는 폭력과 분노로 삶을 망가뜨렸다. 정선생 역시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방황하던 끝에, 결국 히말라야로 향한다. 촐라체는 그들에게 현실의 도피처이자, 영혼의 정화의 장소였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상민과 영교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지만,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려 나간다. 영교는 발목까지 절단당하며 “치료가 되면 다시 촐라체에 가서 잘려나간 살점을 묻겠다”고 말한다. 육체는 상처 입었지만, 정신은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그 자유는 고통의 끝에서 얻은 깨달음이며, 인간이 영적인 존재임을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끊임없이 묻는다.
“왜 우리는 고통을 견뎌야만 하는가.”
“왜 길을 떠나야만 하는가.”
“행복은 정말 가능한가.”


인생은 촐라체와 같다. 그곳에는 크레바스와 같은 절망의 틈이 있고, 누구의 삶 속에도 말할 수 없는 어둠과 분노가 숨어 있다. 그러나 결국 인생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려 있다. 비교하지 않고, 감사하며, 홀로 자기 길을 가는 것—그것이야말로 각자의 촐라체를 오르는 일이다.


생각해볼 문제

1. 세 인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2. 나에게 있어 ‘촐라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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