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토카르추크, 민음사, 2020)
올가 토카르추크(1962) 폴란드 소설가, 심리학자.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상상력의 서사와 백과사전적 열정으로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세계"라는 평을 받았다. 바르샤바 대학에서 심리학 전공. 칼 융의 철학과 불교의 교리에 조예가 깊다.
이 책은 작가가 여행 중 만난 사람들, 또는 그녀의 머릿속에 혼란스럽게 떠돌고 있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어떤 단락은 용어 해설에 그치거나, 어떤 부분은 기행문, 또는 자전적 수필처럼 읽혀지기도 한다. 그 사이사이 서사적인 중단편 소설이 끼어들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장르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서술 방식은 독자의 집중과 사유를 요구한다.
작가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불행한 사람들로 들끓는다. 정체성이 혼란스런 부정적인 인물이다. ‘불법 고용자, 탈주자,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 빚쟁이, 방랑자, 유랑자, 모국으로 추방당한 미친 사람들, 어딘가에 이상적이고 정의로운 나라가 있다고 찾아 헤매는 이민자들’이다.(p.21) 그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통이 생길 것만 같다. 작가의 세계는 그렇게 복잡하고 음울한 세계다.
전반적으로 작품은 이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정신병증 환자, 다중적 인격자, 정체성을 잃은 인물들이 출몰한다. ‘신드롬’편에서 작가는 ‘재발성 해독 증후근’에 대해 설명한다. ‘망가지고 손상되고 상처가 나고 부서진 모든 것에 끌리는 것’ 이것이 나의 증상이라고.
어떤 이유에선가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는 것들, 표준을 벗어난 것, 너무 작거나 너무 큰 것, 넘치거나 모자란 것, 끔찍하고 역겨운 것, 내 감수성은 기형학이나 괴짜를 향하고 있다’고 진술한다. 작가의 내면은 이지러지고 결핍된 인간들로 가득 차 있다.
작품 속 전편에 출현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대체로 그런 캐릭터이다. 아무런 말없이 어린 자식을 데리고 집을 나서는 여자의 이야기, 또는 희귀병을 앓는 아들을 둔 고통스런 부인의 상황이 그려진다. 그들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결국 집을 떠난다. 그들은 방랑자, 노숙자로 떠돌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만,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답답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 놓인다.
작품 곳곳에서 인물들은 외친다. ‘여기 내가 있다’고 자신의 현존재를 의식하며, 덫에서 빠져나오고자 몸부림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작가는 강인한 인물들을 원한다. 작가의 분신들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주저앉거나 소극적으로 갇혀 있지 않는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온몸을 쓰고 꿈틀거린다.
‘머릿 속의 세상’ 자연은 인간의 고통이나 절망에 아랑곳없이 무심히 흘러간다. 어려운 처지에서는 누구도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거나 너그럽지 않다. 오직 자기 자신의 노력만이 구원이다. 화자는 ‘같은 강물에 두 번 이상 몸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하며 희망을 전한다. 어떤 고난도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화자는 아무리 험난한 길에서도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이라고 한다. 스스로 어둡고, 암담한 현실 속에 웅크린 채 낙담하지 않는다. 미력하나마 벗어나려고 바둥거린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 끝에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자신의 심리학 전공은 타인을 도우려는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내면에 감춰진 결함 때문이었으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기에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고 힘들었던 시절을 회고한다. 그런 작가에게 소설쓰기는 또 하나의 고통이다. ‘좁은 1인용 방에 스스로 홀로 가두고, 완전한 고독 속’에 빠져 드는 일이며, ‘통제할 수 있는 정신병이자, 스스로 작업의 족쇄를 채우는 강박적인 편집증’이라고 고백한다.
또한 자신의 특성에 대해서 스스로 평가한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모르고 끼어들며, 입증된 이론이나 통계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일관된 견해를 갖고 싶어 하지 않았고, 머릿속에 떠오른 이상한 현상의 증인’이었다. 이러한 증상은 그녀가 겪어온 불행하고 부정적인 환경적 영향 탓이라고 생각된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어둡고 삭막한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품은 여러 가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글쓰기를 보여주었다. 독자에 따라서는 강한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이런 구도가 다소 혼란스러웠으나, 거침없고 자유스런 글쓰기에 매료되었다. 인물이나 서사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 환경과 인물들이 또 다른 나의 자아인양 공감하며 강한 연민을 느꼈다.
작가는 살면서 매 순간 맞서 싸우라고 외치며, 그때마다 ‘단어를 찾고 입에 올리라’고 주문한다. 모든 상황을 일일이 자신과 타인에게 묘사하거나, 서술하고, 명명하라고 강조한다. 작가의 치열한 정신세계와 글쓰기 방법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한 여정속에서 인간은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는다. 그 속에서 강하게 단련되고 성숙해진다. 이제 어떤 물리적인 환경도 그의 정신세계를 침해할 수 없다.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그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의 현존만이 가치가 있다. 그녀의 개성과 내공이 깃든, 강인하고 단단한 정신세계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