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 문학동네)를 읽고

by 도도히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자기 앞의 생》(1975)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이다. 이 책이 출판되던 해 공쿠르상을 수상한다. 작가는 이미《하늘의 뿌리》(1956년)로 공쿠르상을 받은 바가 있었다. 규정상 공쿠르 상은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데,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러한 이유는 사후 그의 자서전에서 밝혀진다.

이 책은 다문화 사회에서 인간적 차별을 받으며 사는 소외된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이후 영화화(1977, 2020)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한 소년의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라, 사랑과 인간의 존엄성, 사회적 편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작품이다.

처음 이 책은 문학개론 시간에 교수님의 추천을 통해서였다. 간단한 책 소개였는데 모모의 캐릭터가 가슴을 진하게 울렸다. 책을 읽으며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다시 읽었다.


모모에게 펼쳐진 세상

모모는 자신의 진짜 나이와 부모, 출생지를 모르는 고아이다. 어른들은 그가 무슬림 창녀의 아들임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 알려주지 않는다. 그는 호기심이 많은 소년으로 삶에 대해 깊은 생각과 많은 물음을 품고 산다. 모모를 돌보는 로자 아주머니는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젊어서는 매춘 생활을 했으나 현재는 창녀들의 아이를 돌보며 생계를 이어간다. 모모와 로자할머니는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유일하고 절대적인 가족이다.

모모의 정신적 멘토인 하밀 할아버지는 모모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려준다. 그는 양탄자를 팔러 세상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행상이다. 특히 빅토르위고의 작품을 좋아하며 누구보다 경험이 많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훤히 꿰뚫고 있는 박식한 노인이다.


이 소설은 프랑스 사회에서 가난하고 차별받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유대인, 무슬림,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삶을 그린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그만큼 세상은 불공평하고 부조리하며 모순덩어리이다. 작가는 이런 삶을 통해 프랑스 사회의 위선과 편견을 비판한다. 특히 무거운 내용을 어린 소년의 시선으로 전달함으로써 독자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모모 특유의 순수하고 솔직한 모습을 통해 시종일관 따뜻한 인간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면 안 된다.”

모모는 종종 어린애답지 않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말은 로자아주머니의 죽음을 보면서 모모가 내뱉는말이다. 그가 얼마나 로자 할머니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그녀의 죽음을 믿고 싶지 않은지, 가슴을 찡하게 한다. 모모는 점점 부패해 가는 로자 아주머니의 시체에 평소처럼 진한 분장을 하며 그 곁에서 생활한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면 안 된다'는 어린 소년의 말이 오래 진한 여운을 남긴다. 모모에게는 로자아주머니가 세상의 전부였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다

'흰색은 그 속에 검은 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 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다' 이 말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겉에 보이는 색으로 진가를 파악할 수 없다는 말이다. 특히 사람을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겉모습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온전히 깨끗한 인간도, 온전히 더러운 인간도 없다. 예수는 군중 앞에 끌려온 여인을 질타하는 군중에게 말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만이 그에게 돌을 던지라’고. 누가 누구를 정죄하며 돌을 던질 것인가. '가난하고 불쌍하고 더럽고 추악하다'고 누가 누구를 외면하고 비난할 것인가. 모모와 로자아주머니는 세상적으로는 가난하고 더럽고 버려진 하층민들이다. 그렇게 외롭고 천한 환경의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순수한 마음과 사랑은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하다.


인생은 로또다

어느 날 이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 누구는 재벌가에 태어나고, 누구는 거지로 태어난다면 이것은 정말 로또를 맞은 것이다. 생김새도 그렇다. 누구는 원하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일종의 로또이다. 천차만별의 인간으로 태어나, 서로 출발점이 다르니 여정도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구든 자기의 업을 평생 지고 살다 죽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모에게 ‘자기 앞의 생’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하다. 창녀와 아랍인 뚜쟁이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그나마 어머니는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그래서 늙은 창녀에게 위탁되어 키워진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버려지는 고아라니. 아무도 원치 않은 아이, 실수로 태어난 인생이라면 얼마나 억울하고 절망적인 것인가.

모모가 성장하면서 알게 된 로자아주머니와의 관계 또한 모모에겐 몹시 슬픈 일이었다. 로자 아주머니가 자기를 순전히 사랑해서 돌봐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돈으로 위탁된 아이였다는 사실은 또 한번 상처가 되었다. 모모는 다른 아이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생각이 많다. 속이 깊고 조숙하다. 나이에 비해 사회의 어려운 상황을 잘 이해한다.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 할아버지는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진정한 가족이란

가족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요즘은 일인 가족이 대세다. 경제적인 이유로 함께 지내거나 또는 계약결혼이나, 혼전 동거 등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 비혼주의나 고령화사회의 시대적 특색으로 가족의 형태가 더욱 다양해졌다. 굳이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취향이 같고 정서적 교감이 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 친 가족이라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적대감을 갖는다면 서로 상처를 주는 가해자일 뿐이다.

로자 아주머니는 모성애를 초월한 진한 사랑과 희생으로 모모를 돌본다. 또한 모모에게 그런 로자아주머니는세상의 전부가 되고 유일한 가족이다. 그러다보니 죽어가는 로자 할머니를 비밀 지하방에서 돌봐준다. 생전에 그녀가 좋아하는 옷을 입히고 진한 화장을 해준다. 시체 썩는 냄새가 새어나와 이웃이 알아챌 때까지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진정한 가족이란 서로 필요성을 느겨야한다. 혈연보다 관계의 질이 중요하다. 로자아주머니와 모모야말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찐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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