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문학동네, 2021)

by 도도히


‘더 이상 어두운 밤은 없다’

『밝은 밤』은 2020년 봄부터 겨울까지 계간『문학동네』에 연재한 작품으로 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로부터 6.25 동란을 거쳐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 동안 여성 4대에 걸쳐 일어나는 여인들의 아픔과 우정 및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 백정의 딸로 사회적인 천대를 받아온 증조할머니, 대구로 피난을 내려와 재봉 일을 배우며 어린 시절을 보낸 1939년생 외할머니, 70~80년대의 문화에 익숙한 어머니, 그리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화자 지연에 이르기까지 여인들의 삶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남성 중심적인 사고와 가부장제의 관습이 생활전반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은 그런 사회의 그늘 속에서 오랜 세월을 이름 없이 내조하고 희생하며 견뎌야 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여성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가족사의 중심에 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여자로 사는 것이 죄였던 시절

화자는 이혼을 하고 나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지내던 중 희령 천문대 연구원으로 채용된다. 그곳에서 외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증조할머니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된다. 증조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와 6.25 동란을 겪어온 세대이다. 그 시대에 백정의 딸은 짐승보다 더 천시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억울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녀의 어머니(고조모)는 증조모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빠르게 포기하고 체념하는 법을 가르친다. 누구한테 돌을 맞아도 ‘그런 일이 있었다’하고 넘어가라고.


그러나 증조모는 그럴 수 없다. 부당한 일은 부당한 일로, 슬픈 일은 슬픈 일로 솔직하게 느끼고 대응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그러나 그 시대엔 매사에 진실 여부를 묻지 않았다. 그저 죄라면 ‘여자로 태어나서 여자로 사는 것’이 죄일 뿐.


화자에게는 이런 억울하고 답답한 시대를 참고 살아온 여인들의 삶에 주목한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 부모님은 사위 편이었다. 남자가 바람 한번 피웠다고 이혼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사람들이 이혼녀를 우습게 본다고 말한다. 아무리 못난 남자라도 울타리는 되는 법이고, 남자 있는 여자라야 사람들이 함부로 못한다는 말을 한다. 남자는 여자 때리지 않고 도박 안 하고 바람만 안 피워도 상급에 든다고.(p.17)


한때 결혼을 안 한 여자들을 무슨 큰 결함이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작품 곳곳에서 아직도 그런 편견의 시선이 남아있다.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도 여자가 빌미를 제공한 것이고, 이혼한 부부에 대해서도 여자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여자를 욕한다. 화자의 부모도 남자 편에서 역성을 든다. 딸이 받은 상처를 이해하기보다는 사위의 앞날을 걱정한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지만 아직도 남녀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다. 죄라면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사는 것이 죄라는 듯이.


이에 화자는 그런 사실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부당하고 잘못된 것들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이 짓밟히고 배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부부간에 사랑과 신뢰보다 더 소중하고 서로 지켜야할 것이란 없다. 죽을 것 같이 아파서 정신과에 다니며 약을 복용한다.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단지 여자라서 참아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가족 간 불화는 오해와 불행의 씨앗

작품 속에서 할머니와 어머니는 서로 왕래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다. 또한 어머니와 화자 사이도 별로 탐탁지 않다. 서로가 말 못할 아픔들을 품고 타인처럼 살아간다. 한 공간에 사는 가족이 소통하지 못하면, 오히려 서로의 상처를 긁고 덧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피하게 되고 말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알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끼리, 아무렇지도 않은 말에 발끈하고 오해를 한다. 이보다 더 참담하고 불행한 일은 없다.


화자는 어머니가 냉정하고 곁을 주지 않는 인정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어머니 눈치에, 가족 누구도 죽은 언니의 이름을 부르거나 기억하는 것을 금기시하였다. 화자는 이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외로웠고 어머니와 소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죽은 딸의 사진을 버리지 못하고 자책하며 살아온 어머니를 알면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야말로 누구보다도 언니를 잊지 못 하고 사랑하고 있었던 것을.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가족 간 갈등이 점점 사라진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 대해서 속단하고 단정적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이 된다.


강직한 이면에 따뜻한 인간미

증조모 삼천이는 아픈 노모의 병구완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던 소녀였다. 매사 정확하게 사물을 보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당찬 여인이었다. 할머니는 중혼으로 본가로 들어간 남편 때문에 일찍이 생과부로 살아왔다. 재봉 일을 해서 딸을 키웠다. 두 여인 모두 모성애가 강하고 사람이나 동물을 애틋하게 여기고 온정을 쏟는다.

화자는 강하고 당찬 현대 여성의 모습을 가졌다. 바람난 남편의 과오를 용서하지 않는다. 모든 갈등과 사건의 전말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여지없이 이혼해 버리고, 홀로 당당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의외로 약한 모습을 느끼게 한다. 화단에 버려진 유기견(귀리)을 돌볼 때의 일이다. 아픈 귀리를 아기 돌보듯 온갖 정성을 다해 보살핀다. 귀리가 떠나던 마지막 밤엔 괴로워하며, 잠을 설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가 재회하게 된다면 어떤 마음일까. 다시 태어나는 기분일까. 두 번째 삶을 선물 받은 기분일까. 두려울 정도로 행복할까’라고 생각한다. 그날 밤, 그녀는 전 남편을 만나는 꿈을 꾼다. 그의 손을 잡아보고 그를 안아본다. 그녀는 자기 속 어느 한 부분은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p.99)고 서술한다.

‘내가 잃은 것은 기만을 버리지 못한 인간이었지만, 그가 잃은 건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이었다.’(p.100) 그녀가 전 남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나타낸 문장이다. 그만큼 사랑에 있어서 진실하고 모든 것을 다 거는 뜨거움과 순수함이 있다.


그렇게 상처를 입고도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화자는 결혼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자는 강직하고 당찬 외면과는 달리, 여리고 따뜻한 인간미를 풍긴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헤어짐에 서툴다. 누구에게나 예의를 다하고 상대를 배려한다. 이직을 하게 되어 대전으로 떠나면서, 그간 정이 든 할머니와 헤어질 일이 걱정이다.


새비 아주머니 역시 외유내강의 멋진 여인이었다. 남편 없이 온갖 고초를 견디며 딸을 훌륭하게 키운다. 다른 가족 없이 고명딸임에도 곁에 붙잡아 두지 않고 가능하면 멀리 가서 공부를 하라고 가르친다. 그런 덕분에 딸 희자는 약혼 자리를 깨고 독일로 유학을 가서 박사가 된다.


이렇게 작품 속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당차고 강직한 성품이다. 제대로 된 남편이나 아들이 없는 삶을 여인들만의 힘으로 일궈내고 꾸려 나간다.


반면에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존재는 미미하고 보잘 것이 없다. 겨우 새비 아저씨만이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그는 ‘누구 위에 서려고 하지 않고, 아내를 귀하게 여기는 좋은 남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마저 일찍이 죽음으로써 가장의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사형선고를 받는다. 불사의 인간이란 없다. 인생 100년은 한 순간이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화자는 묻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가’라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제 이름 값을 하려면 똑바로 제대로 살아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누구에게 기억되고 싶어서라기 보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감동을 주고 살다 죽는다면 이 세상에 왔다가는 이름값은 하는 셈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가.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되고, 그때 인간은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되고,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라고 화자는 생각한다.


이 소설은 어둔 밤길을 헤쳐 온 여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페미니즘 소설이다.


그러나 ‘당차고 당당하며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이 여인들의 후손은 더 이상 어두운 밤길이 아닌 ‘밝은 밤’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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