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
가을에 입원할 때만 해도 나는 계절이 지나갈 동안 퇴원하지 못했다.
병원에 올 때 챙긴 겉옷은 바람막이 하나뿐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을은 늘 그렇게, 오래 머물 것처럼 느껴지니까.
하지만 시간은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새 병원 창밖의 풍경은 겨울이 되어 있었다.
서울의 겨울은 매서웠다.
바람은 날카롭게 불었고, 온도계는 영하 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날, 남편이 서울로 올라왔다.
잠깐 외출해서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 했다.
병원에서 외출증을 받고 두 시간의 자유를 얻었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비로소 겨울을 실감했다.
바람막이 사이로 파고드는 찬 공기가 몸속까지 스며들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패딩을 사기로 했다.
병원 근처의 신세계 아웃렛으로 향했다.
제주에는 없는 공간이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진열된 수많은 옷들,
사람들의 발걸음, 음악, 따뜻한 실내 공기.
나는 잠시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잊었다.
패딩을 사러 왔다는 목적도 잊고
그저 옷들을 바라보며 눈이 돌아간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때 남편이 내 손을 잡고 패딩 매장으로 데려갔다.
가볍고 따뜻한 패딩을 하나 골랐다.
옷을 입는 순간,
추위가 조금씩 물러났다.
몸이 따뜻해지자 마음도 함께 풀어졌다.
패딩을 입고 저녁을 먹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날의 시간은 이상하게도 짧고, 또 길었다.
추위도, 병원도, 현실도 잠시 잊을 수 있었던
작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날 산 패딩은 이제 낡았다.
곳곳이 닳고, 유행도 한참 지났다.
가족들은 말한다.
이제 그만 입으라고, 새 옷을 사라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패딩을 입는다.
그 옷은 단순한 겨울옷이 아니다.
추위를 막아준 옷이 아니라
내가 버텨낸 시간과
남편과 함께했던 짧은 자유와
그날의 따뜻함을 기억하게 하는 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