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나무는 잎을 떨구고 가을과 함께 묻어둔 옛 추억 속의
사랑과 고독의 잔재들이 찾아온 어느날
친구가 내게 말했다.
결혼전 교회 청년부에 속해 있을 때 잠깐 썸을 타던 남자가 있었는데
꼭 한번 만나고 싶어 한다고.. 그녀는 굳이 만날 필요를 못 느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계속 거절했노라 한다.
그런 친구에게
일도 정리하고 바쁜 일도 없는데 그토록 원하는데 한번 만나주지
그러냐고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대학교수인 그 남자의 학교 근처 찻집에서 오랜 세월을 뛰어넘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친구는 학창시절 이국적인 외모로 나는 그녀를 볼 때 잉그리트 버그만을
늘 연상하곤 했다
예쁘고 얌전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녀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친구를 그 남자는 많이 그리워한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
갸날프고 날씬한 몸매는 세월의 무게 만큼 살이 붙었고
학원 일을 오랫동안 한 친구는 소녀의 모습 과는 거리가 먼
여전사로 변해 버렸다.
반면
그 남자는 오랜 외국 생활에서 배여 있는 여유로움과 세련된 모습에
친구는 단번에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친구는 그 남자가 자신을 실망의 눈으로 보는 것을 느낄수 있었고
이후 그 남자로 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순수했던 시절 작은 보석처럼 간직했을 그의 소중한 추억 속의
보석이 산산이 깨어진 느낌 이었을까 !
하지만
친구는 그 남자로 인해 한동안 마음 앓이를 해야만 했다.
누구에게나 가슴에 사무치는 한가지씩의 추억은 남아 있으리라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다운 것이지만 현실과 마주 했을 때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슬프다.
가을은 아름답게 퇴보하는 계절이다
낙엽이 흩날리는 풍경 속에서 숨겨진 슬픔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