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적인
모든 것을 이뤄지게 하면서도
모든 것을 이뤄질 수 없게 만든다.
이전의 나는 목표가 분명했다.
살을 몇 킬로까지 빼겠다.
교육대학교에 꼭 합격하겠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겠다.
얼마를 가진 부자가 되겠다.
등
이것이 이뤄지도록 치밀하게 계획을 짰으며
조금이라도 계획이 틀어질 경우에는
가까운 상대방에게는 버럭 화를 내고
나 자신은 더 강한 강도로 자책했다.
고등학교 때는 독서실 화장실에서
이것밖에 못하냐고
거울을 보고 나 자신에게 욕을 했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엉덩이가 근질해도,
펜을 든 손에 집중이 전혀 되지 않아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세를 고쳐 앉고
독서실에서 살아야만 모든 것이 안정이 되었다.
목표를 이루는 것이 먼저였다.
아니 정확히는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 목표였다.
내가 망가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목표에 집착하지 않는 지금은
내 시간을 효율적으로 계산한다.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하루에 끼워 넣어 나 자신에게 보상한다.
마음속에 담아둔 선물을
나에게 제공한다.
이런 시간이 병행되어야 결국 내가
그토록 원하는 것들도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목표를 세우고 이뤄가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너무 절실하여 집착과 불안이 커진다면
그것은 목표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에.
그 목표 자체가 내가 될 순 없다고.
이뤄지지 않아도 진정으로 괜찮고,
하지만 끊임없이 정진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아니,
다짐이 아니라 그저 되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