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민 Mar 04. 2022

네? 홈플레이트를 본부석 쪽으로
앞당긴다구요?

부산 사직야구장 리모델링 공사에 대한 단상

롯데자이언츠가 홈 구장으로 쓰고 있는 부산 사직야구장에 때 아닌 토목 공사가 한창입니다.
그것은 바로 홈플레이트와 마운드를 본부석 쪽으로 2.884m 앞당기는 공사인데, 이를 통해 현재의 팀 구성원들의 퍼포먼스를 제대로 끌어냄으로써 경기력 및 성적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근본 취지입니다.

과거 LG트윈스에서 잠실 야구장 팬스를 앞당기는 'X존' 프로젝트를 시행한 바 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이를 철회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위 (홈플레이트를 앞당기는)프로젝트와 롯데자이언츠의 경기력 및 성적 향상의 상관관계는 아직 입증된 것이 없으니 그 효용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입니다.

부산 사직야구장 리모델링 공사 모습


이에 평가는 차치하고, 오로지 비즈니스의 관점으로 언급하고자 합니다.


저는 비즈니스의 참된 목적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를 상품과 서비스라는 형태로 성공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행복에 이르도록 돕는 것'에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Amazon의 제프 베이조스가 매 순간 강조하는 'Customer Obsession(고객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비즈니스맨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이 새겨둬야 할 지향점입니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시장에서의 권력이 기업에서 소비자에게로 넘어간 작금의 시점엔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사직야구장 방문 경험이 있으십니까?

원형 구장인 탓에 모든 객석이 홈플레이트가 아닌 2루 베이스 인근을 바라보게끔 설치되어 있다는 걸 아십니까? (원의 중심이 2루 베이스 인근이다...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수월하실 겁니다. 아래 사진 참조)

사직야구장 내 객석들의 정면이 향하는 곳 (2루 베이스 인근)

이러한 까닭에 본부석을 제외한 대부분의 좌석에선 매 순간 불편하게 몸을 홈플레이트 쪽으로 비틀어서 경기를 관람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지금의 환경도 야구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너무나도 황송할 지경인데, 네? 무려 2.884m나 홈플레이트를, 마운드를 본부석 쪽으로 더 앞당긴다구요? 


아니, 그러면 관객들은 도대체 머리와 목, 그리고 몸을 얼마나 더 홈플레이트 쪽으로 비틀어야 야구 경기를 제대로 관전할 수 있는 겁니까? 등받이가 등받이가 아닌 팔걸이로서 기능하게 될 야구장이라니. 생각만해도 끔찍하네요.


외야는 또 어떻습니까.

가뜩이나 콩알만하게 보이는 내야 선수들이 이젠 제대로 식별이나 되겠습니까? 이래저래 프로야구의 인기가 하락세에 접어 들어 가뜩이나 찾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외야 전체를 사석으로 만들 심산인 건가요?


프로야구를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는 주체라면 고객을 위한 대안이나 배려 없이 이런 무지막지한 프로젝트를 쉽사리 감행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저 야구 경기 하나 만을 바라보는 좁디 좁은 시야가 이런 참사(?)를 빚은 것이죠.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야구 경기는 왜 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내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력 향상을 원하지 않는 관객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나에게 물리적인 불편함을 안긴다면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야구장을 찾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러한 불편함마저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헤비유저들이 아니라 마음에 안들면, 즉 합당한 가치와 효용을 얻을 수 없으면 언제든지 다른 대안을 찾아 떠날 수 있는 라이트유저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제가 지난 2009년 국내 최초로 그라운드 밀착형 좌석을 기획, 도입하면서 왜 좌석 이름을 '익사이팅 존'이라고 지은 지 아십니까?

단 하나, 야구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기존에 없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흥분된(익사이팅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 눈 바로 앞에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 

그들과 같은 시선의 높이로 경기장을 바라보며 함께 교감하고 울고 웃는... 


저는 이러한 고객 중심 마인드의 확산이 한국형 프로스포츠 비즈니스 발전의 밀알이 될 것이라 확신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프로야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여전히 모기업의 홍보나 사회공헌 수단임을 자처하며 그저 제 자리를 힘겹게 지켜내고 있는 것에 만족할 건가요?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근근히 제 자리를 고수하는 것을 우리는 '퇴행'이라 부르지 않던가요?

고객 중심 마인드로 기획된 '익사이팅 존'


모쪼록 롯데자이언츠가 지난 날의 고객 중심 비즈니스 마인드를 한시라도 바삐 되찾길 바랍니다. <끝>

작가의 이전글 리테일 산업과 프로야구 비즈니스의 미래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