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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May 19. 2022

KBO리그 최초의 지정좌석제 도입에 얽힌 추억



중앙 테이블석을 제외한 모든 좌석이 '자유석'으로 운영되던 당시의 KBO리그에 지정석 도입이라는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건 제가 롯데자이언츠 재직 중 이뤄 낸 주요 성과들 중 하나입니다(2009년). 오늘날 대부분의 구단에서 운용 중인 그라운드 밀착형 좌석(익사이팅 존)도 이 때 함께 기획해서 론칭시켰습니다. 아래의 글은 이에 얽힌 추억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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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6월 2일 월요일,

마침내 롯데자이언츠로의 전환 배치가 결정되어 사직야구장 내 사무실에 첫 출근하던 그 날은 놀랍게도 제 생일이었습니다. 참으로 기묘한 연(緣)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없을 큰 생일 선물이기도 했죠.


과거 2년 연속 최하위라는 구단의 파행적인 운영에 분개하여 항의 방문까지 했던 한 청년이 7년 후 구단의 프론트 오피스에서 근무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소위 말하는 덕업일치를 이뤘던 그 날의 출근길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구단 버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롯데자이언츠 전입 후 목격했던 여러 놀라운 장면들 중 하나는 바로 경기장 출입문 앞에 길게 늘어 서 있던 엄청난 대기 행렬이었습니다. 따가운 뙤약볕 아래에서 출입문이 열리는 그 시간 만을 기다리며 힘겹게 서 있는 팬들을 보니 무척 안쓰럽더군요. 야구장을 찾아 주시는 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지만 왜 이렇게까지…


이후 (경기 시작 3시간 전) 출입문이 개방되면 그야말로 지축을 울리는 듯한 굉음(우두두두 내달리는 소리)과 함께 엄청난 인파가 한꺼번에 야구장으로 밀려 들어갔습니다. 중앙 테이블석을 제외한 모든 좌석이 ‘자유석’으로 운용되었던 까닭에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팬들 간의 전쟁(!)이 매 경기일마다 벌어졌던 것이죠. 많은 수의 관리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안전사고의 위험은 늘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진땀나는 광경을 흥행의 상징처럼 묘사하던 당시의 모 언론사 기사에 쓴 웃음을 짓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관중석에 진입한 이들 중 일부 몰지각한 자들은 신문지를 깔거나 스카치 테이프로 경계선을 치는 등의 비열한(?) 수법으로 자신들이 다 쓰지도 못할 엄청난 수의 좌석을 독점했습니다. 이로 인해 좌석 관련 시비가 심심찮게 일어났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이 촉발시킨 야구 붐으로 인해 야구장이 인산인해를 이루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좌석은 가방이 차지하고 사람은 서서 야구를 본다’


…라는 팬들의 탄식을 접할 때 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왜 좌석제도를 이런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일까?’에 대한 강한 의문도 들었구요. 야구단으로 갓 전입해 온 저 였지만, 고객 경험 차원에서 볼 때 이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과거부터 이어져 온 이러한 반 고객적 행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니…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정말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출입문이 개방되기 이전이었음에도 이미 신문지와 테이프 등으로 선점되어 있던 일부 좌석들이었습니다. 이에 분개한 저는 안전관리요원들의 조력으로 이러한 만행을 저지른 자를 찾아내어 엄중히 따져 물었습니다(그는 매점에서 일하던 협력사 직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하게 됩니다.


‘자유석…이대로 방치해선 안되겠구나.’


2008시즌 종료 후 시행된 사직야구장 내 좌석 교체 공사를 계기 삼아 저는 ‘지정석’ 도입 관련 의견을 사내에 적극 개진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야구장 내 지정석(안)을 기획하였습니다.


(1) 중앙 테이블석 추가 설치 및 등급 구분

→ 지정석 R(Royal) / 지정석 P(Premium) / 가족석(Family) / 커플석(Couple)


(2) 1, 3루 내야석 운용방식 변경 : ‘자유석’ 폐지 및 ‘지정석’ 도입

→ 지정석 S(Special) / 지정석 A(Advanced) / 지정석 B(Basic)


(3) 그라운드 밀착형 좌석 신규 도입

→ 익사이팅 존(Exciting Zone)


(*당시 관련기사 링크 :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90403000041)


(**익사이팅 존 - 당시 사직야구장은 1, 3루측 파울 구역이 상당히 넓었기에 이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팬들에게 ‘극적’인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이에 국내에선 찾아 볼 수 없었던 ‘그라운드 밀착형 좌석’을 설치한 뒤 이러한 의도를 표방하고자 ‘익사이팅 존(Exciting Zone)’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초창기엔 메이저리그처럼 시야를 가리는 그물을 없앴는데 위험한 타구가 종종 날아들어 이후엔 부득이하게 그물을 설치했습니다.)


2009년 당시 기획했던 지정좌석제 구역획정(안)


고객의 해결이 필요한 과제(pain point)에 주목하여 이들의 필요(needs)와 요구(wants)를 충족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은 비즈니스의 근본입니다.


지난 2009년, 저와 동료들은 ‘불편한 환경 속에서의 장시간 대기’와 ‘좌석의 선점 및 독점으로 인한 폐해’로 고충을 겪던 팬들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KBO리그 최초로 ‘지정좌석제’를 도입하였고 또 이를 보기 좋게 성공시켰습니다. 이후 ‘지정좌석제’는 타 구단에도 널리 전파되어 오늘날 모든 구단에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KBO리그의 표준 모델화).


많은 이들이 KBO리그의 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선을 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객 가치 구현에 주목하면 프로야구단들이 해낼 수 있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합니다.


Change or Die, Change to Live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귀찮아 하지도 마십시오. 이것은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지나 온 40년을 축하하기에 앞서 앞으로의 40년을 고민하십시오. 관점을 바꾸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제가 앞서 소개 드린 칼럼에서 ‘+293일’을 강조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입니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KBO리그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지정좌석제(안)을 기획하던 당시 필자의 책상 (2009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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