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저래 들은 얘기는 있습니다만) 제 눈엔 수 억원을 들인 이 피칭랩이 '투수들의 역량 향상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서의 도구의 활용'이 아닌 '이런 멋진 도구를 활용한다는 그 자체를 과시'하고 싶은, 다시 말해 '도구의 활용 그 자체가 오히려 목적'이 되어버린 전형적인 케이스로 보입니다.
왜 국내 팀들보다 재정적 여건이 훨씬 뛰어난 메이저리그 구단들 중 절반 이상은 피칭랩을 운용하지 않는 걸까요? 팀 전력에 보탬이 될 수만 있다면 수 억 달러도 서슴지 않고 쏟아 붓는 이들인데.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상시 보유 및 운용에 대한 필요를 못느낀다거나, 실효성에 대한 이견 같은... 아니면 이의 활용은 선수 개개인의 몫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죠.
어디 피칭랩 뿐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시행한 수 많은 (사실상 밑진 것이 대부분인) 트레이드들과 실체조차 모호한 프로세스, 그리고 이를 위해 초빙한 엄청난 숫자의 외국인 스태프(깨알같은 메이저/마이너리그 내 인맥 자랑 포함)와 초유의 '삼단 합체' 이론까지. 그 소리가 아주 요란하죠?
롯데자이언츠 팬들이 만든 '삼단 합체' 관련 패러디물(1)
롯데자이언츠 팬들이 만든 '삼단 합체' 관련 패러디물(2)
변화와 혁신, 필요합니다.
제가 손버릇처럼 남기는 글이 바로 Change or Die, Change to Live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의 제대로 된 시행을 위한 진단(Diagnosis)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절대(!) 안됩니다. 그냥 어느날 갑자기 외국의 시스템을 뚝뚝 가져다 붙이는 것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팀의 문화를 만들고 선수들 개개인에게 성장 지향의 열망을 심어주는 일이 어디 숫자 놀음(그것도 얇디 얇은 데이터에 전적으로 의존한...) 만으로 가능한 것이던가요?
야구는 산수가 아니고 선수들은 장기말이 아닙니다. 지금의 방식이 왜 성과를 못내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경기력이라는 메인 콘텐츠의 붕괴로 인해 함께 뒤틀린 비즈니스는 짧은 시간 안에 복구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지난 40여 년을 잘 버텨왔으니 향후의 40여 년도 문제없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요?
각설하고, 제가 남기고 싶은 말은 딱 하나입니다.
OOO님, 그 귀한 야구 철학과 재능... 왜 상성이 좋지 않은 한국 땅에서 헛되이 낭비하고 있습니까. 부디 시카고 컵스의 우승을 위해 귀하게 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