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델린 비데킹은 과거 탄탄해 보였던 포르쉐가 일순간 존폐의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듯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을 이겨내고 영속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업 모델을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북미시장에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던 SUV 시장이었다.
미국의 SUV 시장은 Ford社가 Explorer라는 놀라운 개성과 실용성의 신모델을 선보인 이래 새로운 유형의 고객들(youthful professionals)까지 시장에 끌어들이면서 찬란한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에 미국 뿐만 아니라 해외(일본, 독일 등)의 자동차 브랜드들까지 앞다투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1998년 기준 미국 신차 시장의 51%를 차지하고 있었던 매력적인 시장, 그 중에서 비데킹이 특히 눈 여겨 본 것은 바로 '럭셔리 SUV' 시장이었다.
구성원들 중 일부는 전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임을 표방하는 포르쉐가 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공고히 쌓아 올린 그들만의 브랜드의 정체성에 손상을 입히는 행위가 될 것이라 우려했다. 그러나 비데킹이 볼 때 SUV는 포르쉐가 충분히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제품군이었다. 여기에 더해 시장 조사 결과 포르쉐의 스포츠카를 보유하고 있는 고객들은 일반적으로 세단과 SUV 또한 함께 보유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비데킹은 SUV 시장에서의 성공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훗날 포르쉐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는 제품은 바로 이들 세단과 SUV 부문이다.)
벤델린 비데킹은 아래와 같이 역설했다.
"포르쉐 오너들의 럭셔리 세단 옆에 나란히 주차되어야 할 럭셔리 SUV는 마땅히 포르쉐이어야 합니다. 럭셔리 SUV 시장은 우리가 새로운 차원의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굉장한 기회입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 마침내 포르쉐는 럭셔리 SUV 기획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SUV는 포르쉐 특유의 스타일을 갖추면서도 강력한 퍼포먼스를 선보여야 하고, 오프로드 드라이빙에도 특출나야 하며, 최고 수준의 실내 편의 장치 갖춘 차량이었다.
그렇게 하여 마침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된 것이 바로 포르쉐 카이엔(Porsche Cayenne)다. 강렬한 성능과 스타일을 지녔다는 의미에서 새빨갛고 톡 쏘는 고추로 널리 알려져 있는 카이엔(Cayenne)의 이름을 따 온 이 차량은 진정 포르쉐와 같은 스포츠카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한 럭셔리 스포츠 SUV임을 표방했다.
카이엔은 여러모로 파격적인 차량이었다. 폭스바겐과의 조인트 파트너십을 통해 공동으로 차량을 개발함으로써 플랫폼 뿐만 아니라 많은 양의 부품을 공유하였다. 그리고, V6 모델의 경우 엔진까지 폭스바겐의 것을 사용했으며 트랜스미션은 일본 아이신社의 것을 사용하였다. 또 전 세계 각지에서 제작한 부품들이 구 동독지역에 있던 라이프치히 공장에서 최종 조립되어 카이엔(Cayenne)이라는 이름으로 출고되었는데, 이는 앞서 비데킹이 주창했던 효율적인 생산방식과 일맥상통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러한 표준화 된 생산공정일지라도 포르쉐의 강력한 핵심 기술력을 그 토대로 삼는다면 특유의 성능과 감성을 충분히 도출해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포르쉐의 브랜드 정체성이 '독일의 레이싱 엔지니어들이 독일산 부품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제작하는 최고급 포츠카'에 있다고 믿었던 일부 포르쉐 매니아들은 이러한 행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4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