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포르쉐 매니아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채널을 통해서 카이엔과 비데킹이 도입시킨 새로운 생산 공정에 대해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카이엔은 내일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차량이었다.
"포르쉐는 왜 순수한 스포츠카 제작 회사로서의 행보를 멈추는 거지? SUV는 느리고 못생긴 차량이야. 카이엔의 몰골을 좀 봐. 현대의 싼타페 닮았잖아. 그런데 뭐? 포르쉐 엠블럼이 붙는다고?" "아, 포르쉐의 위대한 역사와 유산이 이렇게 무너지다니. 카이엔 때문에 포르쉐는 이제 아무나 타고 다니는 차가 돼 버렸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지금까지의 나의 자존심이 이젠 수치심으로 바뀌는 기분이야." "카이엔이나 폭스바겐의 투아렉이나 똑같은 차 아냐? 심지어 V6 모델은 엔진도 폭스바겐의 것을 사용하잖아. 카이엔은 가짜 포르쉐야. 이익 만을 쫓아 이런 만행을 저지르다니. 난 다른 브랜드의 스포츠카로 옮길래." "진정한 포르쉐는 독일의 레이싱 엔지니어들이 독일산 부품으로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드는 예술품이잖아. 그런데 전 세계 이 곳 저 곳에서 끌어 온 부품으로 자동화 기계가 단순 조립한 카이엔이 진짜 포르쉐일까?"
그러자, 카이엔을 묵묵히 지지했던 다수의 고객들 또한 가만히 있진 않았다. 그들은 조금씩 자신의 실제 사용에 기반한 의견들을 개진하며 여론을 반전시키고자 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카이엔은 '꿈꾸던 스포츠카를 찾을 수 없어 직접 만들었다'고 역설했던 페리 포르쉐의 이상이 녹아있는 훌륭한 럭셔리 스포츠 SUV였다.
"카이엔으로 오프로드 달려봤냐? 이거 완전 끝내주는 녀석인데?" "난 내 카이엔으로 길 가에 퍼져있던 다른 차를 견인해 준 적도 있어. 정말 파워풀!" "도로에서 알짱대던 박스터를 내 카이엔으로 확실하게 눌러줬지!"
비데킹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줄곧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카이엔어 더욱 더 많은 정성을 쏟았다. 그리고 이와 병행하여 포르쉐의 포트폴리오와 고객 기반을 더욱 다양하고 충실하게 만들어 줄 전례없는 4도어 세단형 차량 기획에 열을 올렸다. 그 차량의 이름은 바로 '파나메라(Panamera)'였다.
카이엔과 파나메라
기업은 다양한 이유에서 브랜드의 확장을 고민하게 된다. 그것이 자신감의 표현이든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든 근본적인 목적은 매출과 수익 확대를 통해 기업의 영속을 도모하는데 있다. 벤델린 비데킹이 이끌던 포르쉐는 후자(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쪽이었다. 그는 브랜드 확장과 포트폴리오 및 고객 기반의 확대가 회사의 영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시행함에 있어 반드시 고수해야 할 핵심가치와 레버리지를 이용해 확장을 꾀할 수 있는 영역 또한 명확히 구분하고 있었다. 생산공정의 자동화와 해외 공장의 활용, 각 차종 간 부품 공유 시스템, 공랭식 엔진 시대의 종언, 그리고 카이엔 출시 등은 바로 이러한 신념과 자신감이 낳은 결과물들이었다.
이러한 파격적인 시도들은 포르쉐가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브랜드의 정체성을 깨뜨리는 행위 같아 보였지만, 그 속에서도 브랜드의 핵심가치인 포르쉐 특유의 강력한 퍼포먼스와 스타일만큼은 굳건히 지켜지고 있었다. 고객들을 만족시킨 카이엔의 놀라운 성능과 이후 출시된 최고의 스포츠카인 카레라(Carrera) GT는 핵심가치를 지키겠다는 포르쉐의 진정성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포르쉐의 북미지역 사장이었던 슈왑은 이런 말을 남겼다.
“누구나 선망하는 911을 계속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포르쉐는 변신해야만 합니다. 새로운 방향성과 틈새시장 발굴은 이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비즈니스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