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희정 Sep 16. 2023

인천영종고, 왜 특별하니?


결대로자람학교인 우리 학교가 왜 특별하지? 불현듯 해보는 생각이지만, 의외로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인천영종고에 발령을 받은 지 2년에서 두 달이 모자라는 만큼의 세월이 있었고, 그 긴 시간 동안 경험한 사건사고도 학생 학부모 교직원과의 만남과 대화도 여럿이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사랑의 반찬 나누기 봉사'를 작년에는 구경만 하다가 2023학년도부터 지금까지 참여 중이다. 9월 모임까지 7회차의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을 수백여 명 만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 4월에는 인문사회부장님이 주관한 작가와의 만남에서도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가졌다. 덴마크의 학생과 사회처럼 '우리 행복할 수 을까?'를 저술한 연호 작가의 강연, 함께 참여한 교사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2주에 한 번씩 열리는 부장단의 징검다리 회의, 학기가 마칠 때마다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반성과 새 학기 준비를 위한 워크숍, 매주 월요일 교장실에서 함께 한 대화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우리 학교의 특별함으로 다시 돌아와서, 행정실장이라는 관점으로 세 가지를 제시해 본다.

우선, 학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 분위기와 그에 맞추어 최적화된 행정적 지원이다. 학생들 각 개인의 소망과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한 교육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학교의 공식적인 행사에 자주 참여치는 않지만, 어쩌다 함께 한 시간에 목격한 모습은 놀라웠다. 앞서 언급한 사랑의 반찬 나누기 활동에서도 머뭇거리는 학생이나 교직원 또는 학부모를 본 적이 없다. 교육 활동이든 행정적 지원이든 우리 학교 교직원은 결대로자람학교에 맞춤화되어 있는 듯하다.


구체적인 한 예를 들자면, 2022년 8월의 음료 자판기 설치가 떠오른다. 학생회 숙원사업이라며 오랜 기간 논의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2022년 3월 정기 인사발령으로 교장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였고, 기존에 없던 자판기를 설치하자면, 검토할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새로운 학교장의 이해, 사업 계획서 수립과 품의서 작성, 입찰공고, 사용허가에 따른 계약 체결 등 행정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여러 절차들의 수행, 탄산 등 판매 제한 품목에 대한 주기적인 점검을 포함한 관리 감독과 교육지원청의 지도 감독에 따른 업무 추진, 먹고 남은 음료수 캔의 수집과 수거 등에 따른 청소와 관리 등 여러 업무들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이해관계 부서 간에 다툼도 발생할 수 있다.


전임 학교장 재임 시절 결정했고 복잡한 문제들이 산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중요 구성원인 학생회의 건의사항이라는 이유로 자판기 설치 사업은 너무도 매끄럽게 이루어졌다. 물론 사용허가 절차 등에서 세밀하게 관련 규정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며 진행한 행정계장님의 노고가 무척이나 컸다. 올해로 계속 이어지는 사업에서도 수고를 아끼지 않은 계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최근에는 자판기 설치 1년이 지나면서 사용허가 절차를 다시 밟았다. 그 과정에서 당초 예상했던 수익보다 수입이 더 크게 발생하여 열악한 학교 재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학교 구성원들에게 어느새 깊게 자리한 적극적인 업무추진과 자유로운 의사 표현 분위기가 없었다면 과연 이러한 사업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 누군가가 학교는 안정적이고 쾌적한 학습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며, 학교는 다소 엄숙하고 경직된 교육적 분위기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학생회 건의에 따른 자판기 설치 사업은 결코 쉬운 사업이 아니다. 행정실장 입장에서도 새로운 사업 추진으로 하지 않아도 될 업무를 담당할 직원이 어려워한다며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 전반에 이미 자리 잡은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의사 표현 분위기와 그에 협조를 아끼지 않는 행정적 지원은 거스를 수 없는 인천영종고의 업무처리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학교 구성원들의 밝은 표정이다. 사무실에 근무하다가 잠깐 바람 쐬러 정문 쪽에 다녀온 적이 있다. 10시가 넘은 시간인데, 친구와 여유롭게 잡담을 나누면서 등교하는 학생이 있다. 어떤 날은 12시가 넘는 시간에 잠깐 산보하는 길에서 만난 학생도 있다. 물론 개인에 따라 아침 기상이 어렵거나 학생 본인의 감기, 두통, 치통 등 질병과 가족 문제 등으로 늦을 수 있다. 이 경우는 어쩌다가 어쩔 수 없이 늦게 등교하는 학생이다. 그러나 어떤 학생은 특별한 이유 없이 상습적으로 지각 등교하며, 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역이용한다.


그런 학생을 본 날은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울감이 솟구치기도 한다. 그러나 함께 걷다가 학생을 마주한 교장과 교감은 학생을 다그치기보다 이제라도 학교에 와서 다행이며, 어서 교실로 들어가라고 격려한다. 대부분의 학생은 어이없을 정도의 밝은 모습으로 알겠다는 대답을 하면서, 달음박질하며 교실로 향한다. 우리 학교 분위기에 대한 단상이며, 내가 본 우리 학교의 특별한 모습 중 하나이다.


행정실에서 각종 제 증명 발급을 담당한 실무사님들의 밝은 표정도 자랑할 만하다. 매일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친절 응대하는 실무사님들의 업무처리도 우리 학교를 한층 더 결대로자람학교답게 해준다. 정확하며 신속한 업무처리와 함께 학교를 찾아주신 학부모님께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면서, 밝은 얼굴과 말씨로 쾌활한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행정실을 방문한 분들은 이런 분위기를 느낌으로써 더욱 편안하게 업무를 처리하며 다녀갈 수 있다. 작은 행정실의 친절이 결국에는 우리 학교에 대해, 한발 더 나아가서 인천 교육에 대한 만족도와 신뢰도를 높여 줄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애쓰는 실무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실무사님들! 정말 정말 감사해요.


세 번째는 학생과 교사의 교육 활동 중심 추인 교육과정의 결정, 학생이나 학부모에게는 관심이 크지만 교직원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부담이 되고 누군가는 심적 스트레스가 몰아치기도 하는 각종 행사, 현안 처리 등에 있어서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이다. 인천영종고의 행정실장으로 부임하기 전 대부분의 근무 기간을 교육행정기관에서 보낸 필자다. 이 학교에 발령받아 가장 크게 놀라고 감동적인 장면은 2주에 한 번 열리는 징검다리 회의였다.


가장 신기롭다고 생각되는 부분의 회의장 소다. 징검다리 회의는 보통의 학교에서 매주 또는 격주로 열리는 부장단 회의의 명칭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교장실에서 회의를 가진다. 우리 학교 또한 교장실에는 모든 부장이 모일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구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장실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매번 회의를 한다.


제3의 장소 회의가 교장실에서 하는 회의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행정실장인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학교 운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부장단 회의에서조차도 학교장이 권위를 내려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엄청난 수준의 차이가 있다. 교장실 회의에서 연상되는 모습을 그려본다. 교장, 행정실장, 교무부장 순으로 자리를 배치하고, 교장은 근엄한 표정으로 부장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감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듣다가, 이러쿵저러쿵 사안에 따른 교육적 신념과 학교 운영 철학을 전한다. 부장들은 사전에 준비한 사안을 읊조리듯 영혼 없이 보고하면서 이 지루한 회의가 빨리 마치기만을 바라며 메모하는척하느라 애를 쓴다.

그러나 우리 학교의 부장단 모임인 징검다리 회의에 참여한 부장은 그 누구도 메모하느라 머리를 책상으로 향하지 않는다. 참여자 모두의 표정이 진지하게 살아있고, 때로는 유쾌하게 큰 소리로 웃어 젖히는 모습도 자주 있다. 또한 사안에 따라 본인 부서 입장이나 개인 의견을 피력함에 있어서는 거침이 없다. 이렇게 자유롭고 적극적인 회의 분위기가 정착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장실이 아닌 제3의 회의 장소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제3의 장소에서 원탁 형태의 자리 배치도 한몫을 차지한다. 원탁 형태를 선택하는 이유는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소위 상석이라는 개념이 매우 약화되며, 자유로운 토론을 염두에 두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때로는 교감과 교장이 사안에 따라서는 의사결정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안건이 자연스럽게 자유로운 발제와 토론을 거치고, 다수의 공감과 동의를 바탕으로 결정된다. 내가 본 최고의 특별한 학교 모습이다.


이렇게 살아있는 토론과 협의를 통해 운영되는 학교, 자유롭고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가능하며, 교직원의 밝은 표정이 살아 움직이는 사무실,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며 교직원 전체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협의 시스템이 갖추어진 배경은 결대로자람학교의 지정과 운영이라 생각된다. 지난 8년간 결대자람학교의 지정과 운영에 따라 헌신적인 열정을 불태운 교직원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우리 교직원의 정성이 모여서 종국에는 학생들로 하여금 교내의 배움 활동에 조금 더 진지하게 임하며, 아름다운 미래를 가꾸어갈 양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확신한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이 푸근한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