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면 충분하다
국어사전에서 친구란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친구란 이렇다. '아무 일이 없을 때에도, 슬플 때나 기쁠 때도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무엇이 되었건 아낌없이 마냥 주어도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고, 오히려 주는 일 자체가 기쁨이며, 더 못 주어서 마음이 아픈 사람, 그러면서도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의 행동에 대가가 따르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을 사람'이다. 아버지에게는 그런 분이 몇이나 있었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돌아가는 순간, 과연 보고 싶은 친구가 있었을까?
아버지는 거의 매일 농사일에 쫓기셨고, 겨울철 휴농기도 자식 걱정과 돈벌이 생각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친구도 없었지만, 친구라는 이유로 따로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뵌 적이 없다. 언젠가 어린 내가 직접 여쭤본 말이 기억난다. "아버지, 아버지는 친구가 없어요?" "야 이놈아, 내 형편에 친구는 무슨 친구냐, 나는 친구도 없다." 마음속으로 '친구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는 거예요?'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차마 꺼내지 못했다.
인천이라는 곳으로 이주한 50대 이후도 별반 차이는 없었다. 도시의 변변한 직장을 다녀본 일이 없어서 직장 내 친구를 고민할 일도 없었다. 또한 시골에서 50년을 보내고 이사를 온 거대한 도심에서 친구를 사귈 여력 자체가 없었다. 나의 짧은 경험이지만, 건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나이가 비슷한 사장님은 모셔야 할 상전이고, 나이가 비슷한 노동자는 서로의 궁핍한 처지를 공유할 수 없기에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의 친구 한 분을 갑자기 알게 되었다. 아주 의외의 일이다. 친구분은 지금도 고향에 거주하는 지인의 아버지였다. 복흥 5일장에서 소품을 판매하며 지낼 때인데, 어느 날 밤 아버지와 함께 귀가하셨다. 어머니에게 친구라고 소개했고, 저녁밥을 같이 드셨다. 아버지와 그분은 밤새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밤을 보낸 며칠 뒤, 그분은 세상을 스스로 버렸다.
뒷날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 친구의 가정에 불화가 있었고, 그로 인해 몹시 괴로워하셨다. 정확한 진실은 모르겠으나, 아버지 친구분은 자결하셨다. 복흥이라는 곳은 호남정맥이 우렁차게 지나는 해발 400M 고지이며, 산 골짜기에 자리한 동네가 몇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소문이 빠르다. 소문에 휩싸여 마침내는 스스로를 죽음의 길로 몰았다.
이후 넷이나 되던 자녀들은 고모에게 맡겨졌다. 그 친구분의 아내는 타지로 옮겨 갔으며, 돈을 벌어 고모에게 매달 송금했다. 지인에 따르면, 엄마 아빠가 필요한 시절 고모와 함께 보내면서 어려움이 컸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어머니가 계셔서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친구 관계의 형성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대학 등에 재학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친구가 대부분이다. 아버지는 학교 자체를 다녀본 일이 없다. 학교 친구를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나의 경우 고등학교 동기가 450명이나 된다. 언제 어디서 만나든 말을 놓고, 당시의 어려움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애틋함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여러 친구를 갖게 해 주신 아버지에게 감사할 일이다.
사회생활 중 만나는 친구도 중요하다. 나는 군대에서 5년을 복무하였고, 재수와 대학 생활 이후 공직에 입문했기에 입사 동기 중 또래가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 나이가 같은 동기는 네댓 명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어리다. 그래서 교육청에 근무하면서 직장 내 대인관계에서 하나의 원칙을 세웠고, 지금까지 지켜 왔다. 물론 그 원칙은 나만의 것이고, 사회생활의 근간이 되었다. '나이가 적든 많든 누구에게나 존칭을 사용하며, 설령 나이가 같더라도 말을 놓지 말자'라는 것이다.
내 경험상, 지인 간에 말을 놓지 않으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인간관계가 쉽게 어긋나지 않는다. 나이가 비슷하다 할지라도 내가 먼저 확실한 경어를 사용하면, 상대방도 나에게 쉽게 말을 놓지 못한다. 이렇게 생활한 결과, 그간 직장에서 말을 놓는 친구가 없었다. 50대 중반이 넘어선 최근에야 한 명의 친구와 말을 놓고 지내는 중이다.
아버지도 인천이라는 도시에 와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다. 아마도 나처럼 마음이 가깝다고 여겼던 분들도 여럿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시간적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좋은 친구로 이어갈 수 없었으리라 짐작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사람을 만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써야만 한다. 외벌이인 나도 이런 면은 자유롭지 않다. 가끔은 친구와의 약속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어 취소하기도 했다. 미안할 따름이다.
나처럼 30년 또는 40년 지기의 아버지 친구는 없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도, 도시의 삶을 시작하며 자식을 잃어버렸을 때도, 후두암으로 큰 수술을 받고 말씀을 못하실 때도,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주울 때도,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도.... 오직 혼자였다.
그럼에도 친구가 없다고 불행하거나 고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만 건재하면 즐겁고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