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형제들

- 아쉽기 그지 없었던 자녀 교육관

by 조희정

아버지의 형제는 세 분이다. 모두 순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당시의 풍습에 따라 일찍이 결혼했고 분가했다. 아버지보다 조금 일찍 분가한 두 번째 큰아버지도 가난하기는 똑같았다. 왜 그러했는지 모르지만, 큰집으로부터의 독립은 무일푼 출발이었다. 가진 것이 없으면, 배움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마저도 없었다. 오직 젊음밖에 없으셨다.


그렇다고 부모를 원망하거나 물려받은 가난에 대한 원망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중학교까지 다니면서 시골에 살았던 내가 너무 어려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추정하건대, 시골에서의 삶이 자녀들의 학비 아니면 크게 돈들 곳이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처음부터 가진 것이 거의 없다 보니, 자녀 교육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일찌감치 포기했다.


두 분의 큰아버지들은 자신들의 형편과 딴판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모를 리도 없고, 불만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논리나 비판적 사고, 나아가서 미래 지향적인 삶의 설계를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노라'라는 한탄뿐이었다.


세 분 모두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웠던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자녀들이 출생했고, 그 숫자도 4명에서 많게는 6명까지다. 가난한 형편에도 많은 자녀를 둔 이유가 무엇일까? 다복한 후손에 대한 기대와 기쁨을 누리려는 소망이거나 노동력의 확보 차원일 수도 있으며, 피임 방법을 모르거나 게을리한 결과일 수도 있다.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 어른들의 생각을 묻거나 들어본 적은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자녀의 미래를 밝혀줄 배움 활동에 대해서, 아버지를 제외한 두 분의 큰아버지는 관심이 적었다. 사촌 형님들과 누님, 동생들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이상 상급학교 진학을 꿈꾸지 못했다.


7년 전 아버지를 끝으로 세 분 모두 고인이 되셨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자식을 가르치며 가난을 떨치고자 불철주야 사시사철 내내 노동으로 몸부림했다. 이런 아버지였기에 존경스럽고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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