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피와 땀이 서리다
아버지는 2016. 9. 3.(음력 8. 3.) 암 덩어리로 가득한 이 세상을 버리셨다. 고통도 없고, 어쩌면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둘째 아들이 있을지도 모를 하늘나라로 오르셨다. 장례 기간에 어머니와 형, 여동생과 함께 장지를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생각과 의지가 중요했다. 향후 우리 집안의 제사를 비롯한 모든 행사들이 내 차지가 될 수밖에 없음을 모두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지를 정했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가난을 떨치고자 불철주야 일구었던 산자락 밭이다. 수도권에서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리지만, 고인의 영면지로는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시골에서 인천으로 이주한 1990년도 말까지 줄곧 53년을 보낸 곳이다.
가족의 생활비와 자녀의 학비를 대느라 고단한 삶을 보냈으면서도 집터와 땅을 팔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피와 땀이 서린 땅, 그곳으로 모실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묘역을 후일 다른 가족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넓게 조성했다. 묘봉이 없으므로 확장도 가능하다. 작은 비석 하나만 놓았다.
집터 50평, 밭과 논이 각각 300여 평, 형제들 간에 다툼도 가능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단호한 의지로 쉽게 정리되었다. 집터, 논과 밭을 모두 나에게로 이전했다. 땅이 아니어도 부모님 제사를 모셔야 하고,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집안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셨다.
나야 아들이니까 그렇다 쳐도, 혈연관계가 아닌 아내 입장에서는 집안 행사 부담이 적지 않다. 그런 면에서는 미안함이 크다. 제삿날도 그렇지만, 설과 추석도 상차림을 한다. 아내가 불편해하거나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러함에도 행사 일이 다가오면 죄인이 되는 듯하다. 그런 날이면 어떻게든지 도움이 되려 애를 쓴다. 시장에 함께 가서 짐을 나르고, 여기저기 집안 청소를 하며, 상차림 내내 아내 곁을 지킨다.
어쩌거나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나는, 내 땅이란 생각을 버렸다. '내 힘으로 일군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땅이다. 다만 관리권을 이전했을 뿐이다. 내 생전 어떤 경제적 어려움이 따라도 결코 처분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내 아이들이 가지는 땅의 의미는 나와 다를 것이다. 나에게는 아버지의 삶과 고향을 추억할 때마다 떠오르는 아버지의 희로애락이 담긴 땅,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