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사귀고 돈의 흐름을 알게 되었다
순창 복흥에서는 지금도 5일장이 열린다. 매월 3일과 8일이 들어있는 날이다. 아내의 고향도 복흥인지라 연말이 다가오면 장모님이 해주시는 김장을 가지러 매번 다녀온다. 결혼 이후 한 번도 빠뜨리지 않은 연례행사다. 작년 겨울, 여유가 조금 생기자 5일장이 열리는 시장 골목을 아내와 함께 걸었다.
우연한 방문이지만 마침 장날이어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30년도 더 지난 옛날 시장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소품들을 팔았던 좌판이 지금이라도 펼쳐질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장사를 시작하셨다. 당시부터 2년 정도 같은 반 친구 부모님이 운영하던 옷 가게 옆자락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친구들의 집이기도 했던 가계, 옷이며 장신구 등을 팔던 점포들은 여전했다. 언제 열렸는지 모를 만큼 굳게 잠겨진 건물들 사이로 아버지가 좌판을 벌였던 장소도 예전 그대로다. 반갑기도 했지만 고달팠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아내와 함께 거리를 지나치면서 "이곳이 아버지가 장사했던 곳이야. 어릴 때라 당신은 몰랐을 거야. 그렇지?" 내 물음에, 아내는 "엄마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어"라고 의외의 대답을 했다. 아버지는 10여 년간 장사를 했기 때문에 장인·장모님과도 이미 아는 사이였다.
5일장에서 아버지는 도매 시장을 통해 소매로 물건이 옮아가며 차액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끔 광주나 담양의 도매 시장에서 물건을 사 오셨다. 대부분은 복흥 5일장이 열리는 전날이다. 사 오신 물건을 재포장하거나, 가격표를 붙이는 일 등으로 밤늦게까지 어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선명하다. 주로 실과 바늘, 머리핀, 장갑 등 소품을 취급하셨다.
아버지는 시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친구도 사귀셨다.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담배는 매우 즐겼다. 좌판 옆에서 담배를 물고서, 오가는 분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셨다. 장사를 시작한 처음에는 사람 대하기가 어려웠지만, 시간이 가고 경험이 쌓이면서 장사 요령도 터득하셨다. 장날이면 제법 큰돈을 가져오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가난을 떨칠 만큼의 벌이가 되지는 못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타지의 고등학교로 떠났다. 그래서 이후로는 장사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동생의 권유로 인천으로 거주지를 옮기기 전까지 계속하셨다. 형, 동생들의 학업 비용을 비롯하여 써야 할 돈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언제인가 "복흥 5일장에서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라고 말씀하셨다. 친구 개념조차 없었던 아버지는 사람들을 사귈 수 있었고, 도매와 소매라는 유통을 통하여 돈의 흐름까지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