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 상차림
2023년 추석이 1주일 남았다. 이렇게 명절이 다가오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진다. 명절날,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선명하다. 고향 마을에는 아버지 3형제가 모여 살았고, 명절에는 주로 큰아버지 댁에 모였다.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눠 먹고, 사촌 형제들과 시간을 보냈다.
나는 어린 축에 속하여 주로 형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시골에서 사촌 형제들과 즐거운 기억은 거의 없다. 큰 집의 명절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자녀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를 원망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큰아버지가 자신들을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골의 생활은 전반적으로 큰아버지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자녀들의 학교 진학 문제도 그랬다. 큰아버지는 '자식 가르쳐봐야 소용없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식을 어떻게든 가르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셨고, 이것만큼은 큰아버지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아버지 본인은 학교를 통한 배움이 전혀 없는 무학자였으나, 자식들의 배움을 무엇보다 우선시했다. 시골의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그랬고, 도시의 험난한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자식들이 배움을 이어가도록 했다.
설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씻고 큰아버지께 세배를 다녀왔다. 추석날은 일찍부터 큰아버지 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동네 입구 산자락에 위치했던 할아버지 산소에 남자들만 성묘하러 갔다. 오가는 길에서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현재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고, 모든 면에서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나아질 거야"라며, "이러한 희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단다. 그래서 조상님께 감사하다"라고.
시골에 살던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어머니를 닦달하여 명절날 상차림을 시작했다. 조상님 제사는 큰집에서 주관하므로 따로 지내지 않아도 되었건만, 왜 상차림을 원했을까? 자식 걱정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교회나 성당 또는 절에 나가지 않으셨고, 현대적인 철학이나 생각을 접할 기회도 없었다. 이러한 아버지가 자식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명절 아침 상차림이었던 것 같다.
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거나 별도의 의례를 행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도시에 나온 이후까지도 명절이면 어김없이 상차림을 원하셨고, 어머니는 매번 그렇게 하셨다. 그 덕분에 나는 맛있는 음식을 하루 종일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명절마다 기원한다. '조상님들, 이번 해도 우리 가족을 무탈하게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아들과 아내의 앞 날에 건강과 행복만 가득히 내려주시고, 각기 소망하는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 또한 건강하고 부지런하면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있도록 해 주셔요.' 아버지의 명절 아침 기원도 나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