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곡수는 구불구불한 물길에 술잔을 띄워놓고 돌아가며 술을 마시는 풍류라 합니다. 자기 차례가 오면 시를 짓고 나서 마셨다고도 합니다. 복숭아 꽃잎이 같이 흐르는 물 위에 떠오는 술잔을 보면 시가 저절로 나올 듯도 합니다.
상(觴)은 술잔을 뜻한다 합니다. 여러 사람이 차례로 돌아가며 술을 한 잔씩 마시는 것은 순배(巡杯)라고 하고요. 아마도 유상곡수를 하며 몇 순배 돌고 나면 시집 하나가 만들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풍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동진(東晉) 시대 왕희지의 난정집서(蘭亭集序)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합니다. 사오싱(紹興)의 난정에 모인 풍류객들이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다 합니다. 그 시들을 모아 난정집이 되었는데 왕희지가 쓴 서문에 유상곡수가 있다 하네요. 그런데 한잔하고 써서 그의 행서가 유명한 것일까요?
이와 같은 풍류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라시대에 유상곡수를 했던 포석정이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창덕궁 옥류천에도 유상곡수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바위를 파서 둥글게 낸 물길이 있고 물은 빙 돌아 작은 폭포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짧은 시간 내에 시를 지어야 술을 마실 수 있겠군요.
어느 봄날의 옥류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더군요. 고요한 자연 속에 그다지 인공미가 느껴지지 않는 바위의 물길입니다. 이곳에서 시를 짓고 술을 마시던 분들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어쩌면 그날은 신분을 떠나 시를 멋지게 지으시는 분이 왕이었을 듯도 합니다. 바위에는 시도 새겨져 있는데, 숙종대왕의 시인가요? 날으며 흐르는 물이 삼백 척이라 하시네요. 이백의 '비류직하삼천척'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여전히 조금 심하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까요?
어느 봄날에 피어있던 복숭아꽃을 다시 봅니다. 비록 왕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지만, 오랜 친구들과 피어나는 꽃을 보며 몇 순배하고 싶네요. 누군가 시를 읊어도 좋고, 누군가 흥에 겨워 노래를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물론 정겨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할 듯도 하고요. 계곡이어도 좋고 복숭아나무 아래여도 좋을 듯합니다. 꽃잎이 한잎 두잎 떨어지는 술잔을 서로 권하며 마시면 즐겁지 않을 수 없을 듯하네요. 복숭아나무에 꽃이 피듯 우리의 얼굴에도 웃음과 함께 꽃이 피어나겠지요. 어쩌면 이백의 '별유천지비인간'이 부럽지 않을 듯합니다.
이 시대의 소리꾼 오정해의 목소리로 단가 사철가를 들어봅니다. '벗님네들 서로 모아 앉아서, 한잔 더 먹소, 그만 먹게 하면서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자'라는 구절이 마음에 들어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