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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윈드 Oct 22. 2022

사계절의 노래를 선곡해보다.

어젯밤에는 하얗게 핀 매화를 보며 이 무지치의 연주로 '고향의 봄'을 들었습니다. 봄밤에 들려오는 익숙한 멜로디가 꿈같이 느껴지며 마음이 뭉클해지더군요. 문득 곡명을 알아차린 관객들도 순간 밀려오는 감동에 연주 중임에도 어쩔 수없이 박수를 치고야 말았겠지요. 오늘 아침에 다시 들어봐도 좋네요. 현악기들이 만들어내는 멜로디에서는 꽃이 핀 어느 마을에 불어오는 시원하고도 부드러운 바람결이 느껴집니다.


문득 사계절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느낌에 따라 몇 곡을 선곡해보기로 합니다. 물론 어떤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열을 가르는 게 아니고 기호에 따른 그때그때의 느낌에 의한 것이라면 이상하지는 않겠지요?      


봄에는 어떤 노래가 가장 잘 어울릴까요? 역시 '고향의 봄'일 듯합니다.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라는 가사를 들으면 아스라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고향의 봄이 떠오릅니다. 집안의 화단과 동네의 골목길 그리고 언덕에서 피어나던 꽃들은 정말 화사했습니다. 정말 울긋불긋한 꽃의 대궐이었지요. 지난해 피어있던 복숭아꽃을 보며 소프라노 신영옥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여름의 노래를 생각해봅니다. 여름휴가철이 되면 바다에도 가지만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에도 가게 됩니다. 지금은 쉽지 않지만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노라면 정말 편안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요. 머루랑 다래랑 먹고살라던 청산별곡도 생각납니다. 지금은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리라’는 '청산에 살리라'를 듣고 싶네요. 테너 박인수의 노래로 들어 들어봅니다. 여름 비에 젖어가던 풋풋한 꽃사과도 잠시 들여다보면서요.     


    

가을의 노래를 생각하니 별로 망설임 없이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이 떠오릅니다. 맑고 파란 가을 하늘에 흰 구름이 떠가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그리움도 피어오릅니다. 감이 붉게 익어가고 단풍이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흐름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속에 남아있는 오래된 기억들이 아스라이 생각나고요.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르는 ‘저 구름 흘러가는 곳, 그리움도 흘러가라.’라는 가사도 참 좋네요. 붉게 단풍이 들던 나무 아래로 흰 구름이 흘러가던 지난가을의 풍경도 생각납니다.      


               

지난겨울에 눈이 내리는 풍경을 다시 봅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가는 듯하더군요. 그런데 하얀 눈에 파묻힌 남천의 열매는 붉은 색깔이 더욱 선명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눈이 그치고 날씨가 개이자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점점 녹으며 물방울로 떨어지던 소리도 생각납니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던 투명한 물방울은 밝은 햇살이 비치며 반짝이기도 했습니다. 문득, 깊은 밤에 소주를 마시며 시를 쓰고 있을 어떤 시인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라는 명태를 바리톤 오현명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계절에 따른 동요와 가곡을 선곡해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두세 곡이라면 몰라도 한 곡만을 선택하는 것은 정말 어렵군요. 계절마다 그 계절과 삶을 노래한 곡들이 너무 많고 또 그때그때의 마음에 따라 듣고 싶은 노래가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일 듯합니다.      


그런데 계절에 따른 하루 중 가장 멋진 순간은 언제일까요? 문득 11세기에 살았던 세이 쇼나곤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계절에 따른 하루의 좋은 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네요. '봄은 동틀 녘이 좋다. 점점 하얗게 변해가는 산 능선이 조금 밝아지고 자색 구름이 일어 낮게 깔린다.‘ 그리고 여름은 밤이 좋고, 가을은 저녁녘이 좋고, 겨울은 이른 아침이 좋다고 했군요. 자연의 변화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경쾌한 감각으로 표현한 듯합니다.


계절과 계절 안에서의 하루의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고 환경에 따라 또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계절마다 하루의 변해가는 시간을 관찰하고 가장 멋진 순간을 포착해내는 감각이 멋지네요. 그리고 그 순간에 대한 묘사도 유려하고요. 같은 대상이라도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은 시시각각 변해갑니다. 빛도 달라지고 시선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세심히 관찰하고 그 감각을 음미해본다면 새로운 미감이 발견될 듯도 합니다. 저도 조금 더 천천히 세상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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