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윈드 Oct 22. 2022

'죄와 벌'의 에필로그를 다시 읽으며 봄을 기다리다.

며칠 전에 들은 윤새라 교수의 강의에 감명받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한 인간이 또 한 인간을 만나서 '인간에 대한 시선'이 바뀌어가는 과정이 감명 깊습니다. 멋진 문장들이 많지만 라스콜리니코프에게 하는 소냐의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그녀는 가족을 위해 몸을 파는 창녀였지만 가장 순수한 영혼이 아닐까요?     


"당장 광장 네거리로 가세요. 가서 무릎을 꿇고 당신이 더럽힌 대지에 입을 맞추세요. 그리고 사방을 향해 절을 한 다음에 '제가 죽였습니다'라고 말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새 생명을 주실 거예요."


그리고 마음에 와닿는 에필로그의 몇 문장을 다시 읽으며 천천히 음미해봅니다.


'지대가 높은 강기슭에서는 탁 트인 주변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맞은편 강가에서 노랫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오고 있었다. 그곳에는 자유가 있었고, 이곳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또한, 그곳은 마치 시간마저도 멈추어 버려서 아브라함과 그의 목축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이제야 강 건너를 바라보며 자유를 느끼는 듯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노랫소리가 나오네요. 아직은 가물가물하지만요. 그리고, 그는 소냐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그의 눈물은 아마도 벅차오르는 기쁨 때문이 아닐까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불현듯 무언가 그를 사로잡아서 소냐의 발에 몸을 던지게 한 것 같았다. 그는 울면서 그녀의 무릎을 안았다. (중략) 그들을 부활시킨 것은 사랑이었고 한 사람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한 삶의 무한한 원천이 간직되어 있었다.'


그는 영혼이 자유로워지며 사랑도 느끼네요. 그리고 도스토옙스키는 사랑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한 삶의 원천이라고 말하는군요. 한 사람을 벌레처럼 죽여도 좋다던 생각은 또 한 사람의 사랑에 의해 변하고 그도 사랑을 느끼게 되는군요. 이제 정의에 대한 그의 생각도 조금 달라질 듯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네요. 어쩌면 그들에게는 새로운 삶과 희망이겠지요.     


'이제 새로운 이야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이야기, 이제까지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어두운 밤에 지친 몸으로 찬바람이 몰아치는 눈 쌓인 계곡을 헤매다가 불빛이 비치는 오두막을 만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그리고 여주인이 따뜻하게 맞아주며 난로가로 안내하고 뜨거운 커피를 가져다준다면요. 그런데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소냐가 구원의 여인이었다면 우리에게 소냐는 누구일까요?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이름은 '분리'를 뜻하는 라스콜에서 나왔고 소냐는 '지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진눈깨비가 날리던 아침에 잠시 바라본 박주가리는 여전히 홀씨를 날리고 있습니다. 하얀 솜털에는 눈꽃이 피었습니다.      


   

양지쪽에서 봄까치꽃이 활짝 피어있고요. 이 한 겨울에도 꽃이 피는 모습이 정말 신기하네요.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라 노래했던 셸리의 시구가 생각납니다. 겨울은 겨울대로 인정해야겠지만 아지랑이 사이로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오르는 봄이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따뜻한 봄날의 사랑의 노래 같은 베토벤의 로맨스 2번을 르노 카푸송의 연주로 들어봅니다.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며 이런 아름다운 멜로디를 작곡했던 베토벤의 심경도 느껴보면서요. 따끈한 커피도 한 잔 해야겠습니다.      

이전 13화 '독일인의 사랑', 다시 느껴보는 아름다운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