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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윈드 Oct 22. 2022

루쉰의 '고향' 그리고 여러 색깔의 산수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성장하고 사회는 변화합니다. 그런데 항상 현재가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미래에의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고달픈 현실에서 미래를 향해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과거의 기억은 현재보다 더 아름다울 수도 있을 듯합니다.


루쉰의 단편소설 '고향'을 들었습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1920년대의 중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과거에 대한 기억과 현실 그리고 미래에의 희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합니다.       


어느 차가운 겨울날에 주인공은 20년 만에 2천 리가 떨어진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고향은 오랫동안 간절하게 그리워했던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마을을 바라보며 그는 슬픔을 느낍니다. 그의 마음속의 고향은 그렇게 황폐해진 곳이 아닌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냥 생각만으로도 좋고 아름다운 곳이 고향'이라고 말합니다.      


오랜 시간이 환경을 바꾸는 것이겠지요. 더구나 겨울이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을 듯도 합니다. 어쩌면 그의 어린 시절의 고향에도 봄에는 복숭아꽃도 피고 살구꽃도 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같이 뛰어놀던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고요.     


그는 어머니로부터 어린 시절의 친구인 룬트가 안부를 물었다는 말을 듣고 새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던 추억을 떠올리는군요. 그리고 수박밭, 조개껍데기, 새의 아름다운 깃털 등의 이야기도 생각해냅니다. 어쩌면 그의 고향은 마음속에 있는 것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만난 룬트는 어린 시절의 룬트가 아니었습니다. 홍조를 띠던 얼굴은 누렇게 변해있었고 주름살도 깊게 패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다른 삶을 살아온 그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지 않는군요. 추억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어머니와 어린 조카와 함께 떠나오는 배에서 그는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고향과 고향마을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수박밭에서 쇠스랑을 들고 동물을 잡던 룬트에 대한 기억도 함께 사라져 가는 것에 슬픔을 느낍니다.


언제 돌아오냐는 조카의 질문에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군요.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그리고 어린 조카와 룬트의 아들이 그들처럼 고달픈 생활을 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의 생각을 직접 들어봅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삶,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기를 기도했다. 룬트가 향로와 촛대를 가져가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중략) 곰곰이 생각하니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어리석었다. 내가 어린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지는 것과 룬트가 향로와 촛대를 통해 희망을 갈구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차이라고 해봤자 내가 생각하는 희망이 무척 막연한 반면, 룬트가 생각하는 희망은 매우 절실한 점이라는 것이다.     

나는 다시 고향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보름달이 떠올랐던 해변 근처의 수박밭도 떠올랐다.      


이어서 다시 희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부터 있다고 할 것도 아니요, 또 이 세상에 없다고 할 것도 아닌 것. 그것이 희망이다. 희망은 마치 땅 위에 나있는 길과 같은 것이다. 원래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길이 생겨난 것처럼 희망도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기며 낮에 본 산수유 열매를 다시 봅니다. 추운 날씨에도 빨간 색깔로 곱게 익어 가더군요. 어느 노란 열매에는 붉은색이 차오르며 익어가기도 하고요.      


     

뭔가 투명해 보이는 붉은 열매에는 어떤 생명력이 가득해 보입니다. 아마도 내일에의 희망의 씨앗을 품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로 들어봅니다. 이제 아름다운 꿈을 꾸며 잘 자고 나면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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