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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윈드 Oct 22. 2022

'독일인의 사랑', 다시 느껴보는 아름다운 이야기

며칠간 비교적 훈훈했던 겨울 날씨가 다시 영하로 내려가고 차가운 공기는 얼굴을 스칩니다. 하지만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은 눈이 부시고 왠지 따뜻한 느낌도 듭니다. 밝은 햇살이기 때문일까요?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오디오 북으로 들었습니다. 희미한 기억 속의 아련한 느낌이 다시 분명해집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 때쯤 인듯합니다. 기억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렇게 아스라하군요.      


이제 다시 들어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빛이 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장 속에 잔잔하게 호흡하듯 커가는 두 남녀의 사랑 그리고 또 다른 한 남자의 이야기가 다시 감동으로 밀려옵니다. 부드러운 숨소리와 뛰는 맥박이 느껴지는 듯한 그의 문장들을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다시 음미해보고 싶어 집니다.      


'어린 시절은 그 나름의 비밀과 경이로움을 갖고 있다. (중략) 우리는 모두 한때 모든 감각이 마비된 행복감에 젖어 눈을 떴으며, 삶의 아름다운 현실이 우리의 영혼 위로 넘쳐흘렀었다. (중략) 그것은 일종의 영원한 삶이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정체와 고통도 없는. 우리의 마음속은 봄날 하늘처럼 맑았고 오랑캐꽃 향기처럼 신선했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면 그 시절이 행복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떠올리는 기억과는 상관없이 그 시절은 실제로 아름다웠을 것이고 또한 한 세계였을 듯합니다. 주인공의 첫째 회상이 눈앞에 그려지며 미소가 지어집니다.     


'너, 가엾은 인간의 마음이여! 그렇게 해서 이미 봄철에 너의 꽃잎들은 너무도 빨리 꺾이고, 네 날개에서는 깃털들이 뜯겨 나가는구나! (중략) 태양빛이 없으면 한 송이 꽃도 피지 못하듯,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가 없다.'


'그'의 이야기는 몇몇 장으로 구성된 회상으로 전개됩니다. 하지만 각각의 장은 구분된 것이 아니고 그의 연속되는 삶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회상에서 그는 '사랑'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는군요. 그는 사랑은 삶 자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다시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지금껏 누구도 그것을 설명한 사람은 없지만, 재회며, 재발견, 회상 이런 것이야말로 거의 모든 기쁨과 모든 즐거움의 비밀스러운 원천인 것이다.'


그는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편지를 받는군요. 성장하면서 이미 자신의 마음속의 수호천사가 떠나가 버린 것을 알고 있는 그에게 이제 그녀가 천사가 되는 듯합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감정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중략)  그때 내 느낌은 슬픔도 기쁨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그녀와 대화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하는군요. 이제 어린 시절의 친밀감이 이제 조금씩 색깔을 달리하는 듯합니다. 아마도 어느 순간에 눈으로 들어왔다거나, 한순간에 빠져버린 감정은 아닌 듯합니다. 많은 대화 속에서 서로가 간직한 맑은 영혼을 느꼈던 것이겠지요. 그는 그들의 조화로운 대화를 연주회에 비유하는군요.     


'그전에 언젠가 나는 우리 시대의 저명한 음악가 한 사람이 자기 누이랑 함께 피아노 앞에 앉아 즉흥곡을 연주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떻게 저 두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그들의 악상을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는지 (중략) 실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 저명한 음악가는 펠릭스 멘델스존인 것 같습니다. 그의 누나인 파니 역시 훌륭한 피아니스트였고 작곡도 했는데, 이 남매는 사이가 아주 좋았다고 하는군요. 멘델스존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작가의 글을 읽으니 새삼 19세기의 낭만주의 음악이 듣고 싶어 집니다.      


워즈워드의 고지의 소녀의 시구는 마치 그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네 목소리를 듣고 너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너의 오빠라도 좋고,

너의 아버지라도 좋다. 아니 너를 위해 세상의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


시인의 언어가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들며 그들의 사랑의 언어가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지요.


'눈앞에 낭떠러지를 본 기사처럼 나는 고삐를 힘껏 뒤로 잡아당겼다. (중략) 곧 그녀를 만나게 된다는 희망이야말로 지금껏 내가 누렸던 그 어느 행복보다 큰 것이 아니겠느냐?'


그녀가 이틀간 만날 수 없다고 편지를 보내온 것은, 그녀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쳐오는 그 감정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녀의 감정도 이미 한 편으로는 고통이 될 정도로 너무 커져버렸나 봅니다. 그런데 천국과 지옥은 사실 멀리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사랑에 빠진 청춘들은 매일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요.      


'그녀와 더불어 침묵하고 있는 시간은 실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영혼의 깊이가 그대로 내비친 그녀의 얼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녀의 내면 깊이 감추어져 생동하는 모든 것을 듣고 보았다. 당신 때문에 마음이 괴로워요라고 그녀는 말하고 싶으면서도 그 소리를 입 밖에 내려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또 만났지요? 그냥 가만히 계세요! 불평하지 말아요! 원망도 하지 마세요! 반가워요! 나한테 화내지 말아요! 이 모든 말이 그녀의 눈에서 배어 나왔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이 행복한 평화를 감히 입을 열어 깰 엄두를 못 내었다.'


그리고 다시 만나는 장면은 정말 아름답네요. 고요한 침묵 속에서도 그들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깊고 그윽한 눈을 바라보며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느끼는군요.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그녀는 결정의 순간을 마냥 미루려는 듯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왜라니요? 마리아! 어린이한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도록 되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그녀의 질문은 사실 질문이 아닐 것입니다. 그를 사랑하기에 그와 함께 오래 보낼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인 듯합니다. 그런데 서로의 마음을 느끼던 그들은 서로의 언어로 확고해집니다. 언어는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구체화하고 또 견고한 것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네요.     


'그녀의 마음속은 차츰 잔잔해졌다. 소리 없는 저녁노을처럼 그녀의 뺨에 홍조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반짝 떴다. 태양이 신비스러운 빛을 발하며 다시 한번 뜬 것이었다. (중략) 나의 입술은 지금 막 내 생의 축원을 읊은 그녀의 입술을 부드러운 키스로 덮었다. 시간은 우리를 위해 정지해 있었고, 주변 세계도 사라져 버렸다. 그때 그녀의 가슴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쩌면 이야기는 이대로도 좋을 듯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또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한숨을 내쉬겠지요. 그런데 사랑했던 여인을 위해 떠나갔다가 의사가 되어 돌아온,  또 다른 한 남자가 한평생 마음속에 묻고 있던 이야기는 또 한 번 마음을 흔들어놓는군요. 그런데 그의 사랑은 이제 시간과 더불어 성숙해진 듯합니다.      


시간은 흐르지만 기억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어쩌면 어떤 기억 속의 그리움은 조금씩 더 깊어질 듯합니다. 어느 여름날이 되면 그는 홀로 산책을 하며 그 시절을 떠올리겠지요. 그리고 그는 사랑과 인생의 비밀을 하나하나 알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다시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네요. 아스라한 기억도 좋지만 다시 느껴보는 아름다움은 또다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시며 멘델스존의 한 여름밤의 꿈 중 녹턴을 들어봅니다. 마치 꿈같이 피어오르는 선율이 마음을 감싸오며 그들의 이야기가 다시 들려오는 듯합니다.       


뜨겁던 지난 여름날, 여린 줄기와 초록 잎 사이에서 맑은 향기를 날리던 박주가리 꽃을 떠올려봅니다. 솜털이 보송한 작은 꽃에서는 다가갈수록 향기가 더욱 진하게 느껴져 오더군요. 하얗게 부풀어 오르던 꽃봉오리도 활짝 핀 꽃도 모두 아름다웠습니다. 그 계절은 이미 지나갔지만 꽃의 미소와 향기는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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