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들었습니다. 낭랑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페스트를 피해 데카메론의 이야기를 나누던 중세 피렌체의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언제 사라질까요?
지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사람과 생활 속에서 체득하여 아는 사람의 만남이랄까요? 어쩌면 누가 더 현명하다거나, 옳고 그르냐는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지식은 많지만 행동은 망설이는 사람과 충동적인 행동 속에서 지혜를 얻어가는 두 사람의 대비가 극명한 듯한데, 결국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조금씩 닮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 속에는 다소 복잡하고 고달픈 그리스의 현대사가 담겨있는 듯합니다.
크레타섬의 한 언덕에서 내려와 바닷가로 가는 도중에, 그는 '눈처럼 하얀 숄을 두르고 노란 장화에 스커트를 걷어올린 처녀들이 재잘거리며 다가오는'것을 바라봅니다. 그녀들은 수녀원에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는 이 섬의 여인들이 해적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을 보이는 아가씨들에게 길을 비켜주며 인사를 하는군요. 그러자 아가씨들도 밀집대형을 풀고 그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합니다. 마침 수녀원의 종소리가 들려 주변에 즐거움이 가득 차게 만들어주고요.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그의 느낌과 생각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멋진 문장입니다.
'해가 솟아오른 하늘은 맑았다. 나는 암초 사이에 앉은 갈매기처럼 바위틈에 앉아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았다. 내 몸은 기운이 넘치고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 주었다. 마음은 파도를 따라가다가 어느새 파도 한 자락이 되어 바다의 리듬 속으로 잠겼다. 내 마음이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 희미하지만 호소하는 듯한 소리가 내부에서 일어났다. 누가 나를 부르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무서운 예감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내가 혼자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나에게 호소하고는 했다.
그 무서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나는 서둘러 여행 친구인 단테를 폈다. (중략) 나는 천국과 지옥과 연옥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시를 읽으면서 나는 괴로워했고 행복을 기다렸고, 행복을 맛보았고 무아지경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단테를 덮고는 바다를 바라다보았다. 갈매기 한 마리가 물에다 가슴을 대고 출렁거리며 파도에 송두리째 몸을 맡기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맨발의 젊은이는 물가로 나와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 목소리가 수평아리처럼 쉬어가는 것으로 보아 젊은이는 제가 부르는 노래의 아픔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백 년 동안 단테의 시는 시인의 조국에서 애송되어 왔다. 사랑의 노래가 소년과 소녀들에게 사랑을 준비하게 만드는 것처럼, 이 뜨거운 피렌체 사람의 시구는 이탈리아 젊은이들에게 자유의 날을 준비하게 만들었다. 대를 이어 사람들은 시인의 혼으로 대화를 나누었고, 마침내 노예생활을 자유로 바꾸는 것이었다.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냥 단테의 하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돌아보자 조르바가 뒤에 있었다.'
그가 읽은 단테는 신곡이네요.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을 다녀오고 베아트리체의 손에 이끌려 천국을 다녀온 것처럼, 그는 친구인 단테에 의해 천국과 지옥과 연옥을 드나드는군요. 그런데 왠지 그가 단테를 덥고 바다와 갈매기를 본 것은 잘한 듯합니다. 어쩌면 내면의 무서운 소리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잘 날려 보낼지도 모르니까요.
영화로 만들어진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나'와 '조르바'가 춤추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며 둘은 바닷가에서 같이 춤을 추더군요. 멋진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갑니다. 그들은 정말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것일까요?
오늘도 날씨는 차갑고 흐리지만 열매들은 여전히 붉게 익어있습니다. 그녀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살펴보니 그 안에 담고 있는 어떤 시간과 의미도 느껴집니다. 바위 앞의 낙상홍은 정말 붉은 모습입니다. 왠지 만지면 터질 듯도 하네요. 여럿이 모여있으니 더욱 붉은 듯도 하고요.
점점 익어가는 배풍등의 붉은 열매에서는 탄력이 느껴집니다. 점점 색깔이 붉어지는 열매들은 둥근 등불이 켜지는 듯합니다. 초록이었던 열매가 점점 익어가는 모습을 한꺼번에 보게 됩니다. 노랗게 변해가고, 주황으로, 다시 주홍으로 그리고는 마침내 빨갛게 익고야 마는군요.
만지면 바삭하고 부서질 듯한 듯한 남천의 열매도 정말 빨갛네요. 알알이 영근 열매들이 붉은빛으로 반짝이는데 갸름한 모양의 잎새도 점점 붉어지는군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이제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어 보입니다. 겨울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모습이 그저 탐스럽기만 합니다.
바람 끝은 여전히 차갑지만 붉게 익어가는 열매들이 있어 아직은 늦가을이라고 생각해봅니다. 흰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저 붉은 열매 같은 뜨거운 기억은 남아있겠지요?
그런데 아름다운 열매를 바라보는 도중에도 카잔자키스가 말하는 '자유'라는 단어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아무래도 그리스 악기 부주키가 만들어내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조르바의 춤 시르타키를 다시 한번 감상해야겠습니다. 그리스 음악 렘베티카에는 뭔가 독특한 분위기가 있군요. 어쩌면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노래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