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윈드 Oct 22. 2022

사계절을 생각하며 들어보는 오페라의 합창

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활짝 개었습니다.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다니고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상쾌합니다. 부드러운 햇살은 열매들을 더욱 붉게 익어가게 하는가 봅니다. 가을은 생각보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네요. 가슴에는 붉은 열매들을 가득 안고 말입니다. 아직 초록 잎이 가득한 커다란 나무에서는 매미소리가 울려옵니다. 뭔가 리듬이 있는 그들의 합창이 오랫동안 계속되는군요.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늦여름의 정자에 앉아 계절의 합창을 생각해 봅니다. 각 계절은 각 계절마다의 노래가 있을 듯합니다. 사계절의 풍경을 떠올리며 오페라 속의 합창곡을 골라봅니다. 계절마다 피어나던 꽃들과 익어가던 열매들도 다시 보면서요.     


봄날에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납니다. 꽃들은  따뜻한 날씨를 잘 알고 있는가 봅니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결도요. 연두색 잎 사이마다 하얗게 피어있는 야광나무의 꽃이 봄바람에 살랑거립니다. 얼굴을 살짝살짝 흔들릴 때마다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매자나무 꽃이 피어있는 정원에는 봄빛이 가득합니다. 활짝 핀 노란 꽃과 색색의 잎들이 바람의 리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듯도 하고요. 봄의 색깔은 생각보다 강렬합니다. 한가득 피어있는 붉은 영산홍의 꽃들이 이름처럼 붉네요. 서로 얼굴을 맞대고 힘차게 부르는 노래는 어떤 것일까요?     


줄을 지어 피어나는 병꽃이 춤을 추는 듯합니다. 분홍 저고리에 녹색 치마를 입은 것일까요? 화사한 햇살 아래 피어있는 빨간 장미는 색깔만큼이나 향기도 강렬하네요. 그녀들의 빨간 웃음은 그냥 지나치기 힘든 유혹이네요.      


봄의 합창곡이라면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Gli aranci olezzano)'가 아닐까요? 때는 봄날입니다. 어딘가에는 꽃들이 피었을 것이고 종달새는 날아오르며 노래하겠지요. 마을의 여성들이 흥겨운 듯 먼저 노래를 부르고 남성들도 이어 부르는군요.     


여름에도 꽃은 피어납니다. 뜨거운 여름날 그늘에서 피어나던 색색의 꽃들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어떤 꽃은 벌써 열매가 되어가기도 하는군요. 시원한 그늘의 산수국은 아주 작은 꽃이 노래를 하자 연한 분홍색과 하늘색의 헛 꽃들은 춤을 춥니다. 그녀들은 스스로 꽃이 되고 나비도 되는군요.      


마치 진주 같은 아이보리색 꽃봉오리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쉬땅나무의 하나둘씩  피어나는 꽃은 미소가 되고 웃음소리는 노래가 됩니다. 온기가 가득한 바람이 불어오자 작은 꽃들이 가볍게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초록 잎 위에 피어있는 삼색 무늬 바위취의 꽃들은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듯도 하네요.      


별 모양으로 피어나던 흰말채나무의 하얀 꽃은 벌써 열매가 되어 하얗게 익어갑니다. 뭔가 대리석 위에 하얀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울림이 느껴집니다.


맑은 향기를 날리는 하얀 꽃들의 작은 나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꽃댕강나무의 하얀 꽃들이 피고 지니 연주 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군요.      


     

여름의 합창곡을 생각해 보니 '대장간의 합창(Anvil Chorus)'으로 잘 알려진,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중 '집시들의 합창(Coro di zingari)'이 떠오릅니다. 태양보다 더 뜨거울 듯한 대장간에서 망치질을 하는 사람의 땀방울이 강철의 불꽃과 함께 튀어 오르는 듯합니다. 그런데 노랫소리는 더욱 강렬하네요.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열매들은 익어갑니다. 지난여름 뜨거운 햇빛을 간직해온 낙상홍 열매들의 색깔이 점점 진해집니다. 지난봄과 초여름에 꽃은 열매가 되더니 이제 단단하게 영글어갑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인 것이겠죠. 초록 잎 사이에 빨간 열매들이 마치 악보 같기도 합니다.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멜로디는 어떤 것일까요? 아마도 햇빛과 빗물과 바람이 가득한 노래일 듯합니다.     


     

점점 진해지는 작은 보라색 구슬들이 쏟아져 내리는 듯합니다. 수많은 열매를 맺고 있는 좀작살나무의 가지가 흔들거리니 보랏빛 울림이 느껴지는군요. 봄날의 노란 꽃이 이제 가을이 되니 빨간 열매가 되었습니다. 진하게 익어가는 매자를 보니 묵직한 음성의 가을 노래가 생각납니다.       


점점 노랗게 물들어가는 잎과 함께 빨간 야광나무 열매들의 힘찬 합창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붉게 반짝이는 열매들의 노래는 흥겹기만 하네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가을 하늘에 산사나무의 빨간 열매가 가득합니다. 산들바람에 쏟아지듯 흔들리는 그 모습 그대로 가을의 노래가 되는 듯합니다.      


가을의 합창곡으로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중 '사냥꾼의 합창'을 들어봅니다. 중후한 음색인 호른의 울림과 함께 즐거운 노래가 울려 퍼지네요. 모두가 남성인 사냥꾼들은 '세상의 어떤 즐거움을 사냥에 비교하랴?'라며 노래하는군요. 그런데 땀을 흘리며 사냥을 한 후에 시원한 술을 마시는 것도 즐거운 일일 듯합니다.


그리고 겨울입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나뭇잎은 더욱 진하게 물들어갑니다. 단풍 든 나뭇잎과 함께 열매들의 색깔도 더욱 진해지고요. 그리고는 다시 땅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눈이 내리면 세상은 또 하얗게 변합니다. 하얀 눈을 쓰고 있는 붉은 열매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비록 춥지만 오래도록 붉은 정열을 간직하고 있는 열매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뜨거워집니다.     


남천의 열매도 잎도 온통 붉어졌습니다.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에 붉은 잎은 춤을 추고 빨간 열매는 구르는 듯합니다. 그런데 겨울의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는 붉은 열매는 뜨거울 듯도 하네요. 내리는 눈은 배풍등의 빨간 열매에도 아직 진한 초록인 열매에도 쌓여갑니다. 하얀 눈 사이에 붉은 보석들을 바라보니 뭔가 포근한 겨울의 노래가 들리는 듯합니다.      


가지마다 가득 달려있는 낙상홍의 붉은 노래는 더욱 강렬해지는 듯합니다. 하얗게 쌓여가는 눈송이가 차가워서인지 그녀들의 볼이 더욱 붉어졌네요. 아그배나무의 검붉은 열매 위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들의 뜨거운 정열 때문인지 눈이 조금씩 녹아내리는군요. 조금씩 떨어지는 눈물은 또 다른 리듬이 되는 듯합니다.      


앙상한 매자나무에 흰 눈이 흩날립니다. 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빨간 열매들도 날아가는 듯합니다. 어느 겨울날에 자연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장엄한 느낌이 드는군요.      



겨울은 차갑고 어두운 느낌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뭔가 따뜻함도 있는 듯합니다. 겨울의 합창으로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중 '그랜드 마치(Grand March)'가 어떨까요? 영주가 주최하는 노래 경연에 입장하는 참석자들의 행진과 합창이 힘차네요. 뭔가 손과 발에 힘이 들어가며 마음도 씩씩해집니다. 


창밖에 부드럽게 쏟아지는 밝은 햇살과 산들 하게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합창을 들으니 더욱 즐거워집니다. 그런데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의 '가라 상념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i dorate)'로 시작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도 떠오네요. 이 합창곡은 어느 계절에 잘 어울릴까요? 어쩌면 언제나 잘 어울릴 듯합니다. 들어도 들어도 좋으니까요.      


이전 19화 비에 생기를 더해가는 꽃들 그리고 루벤스의 그림 한 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