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는 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알게 될까요? 정교하게 만들어진 시계를 보며 시간을 알아차리는 것일까요? 어떤 시계는 GPS로 그리니치 표준시에 맞추어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아니면 변해가는 자연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일까요?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변해가는 모습을 잠시 다시 바라봅니다.     

어느 겨울날에 흰 눈이 훨훨 내리며 세상은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흑백의 세상이 되어가는 듯도 했고요. 눈은 커다란 아카시 나무 위에도 내리고 그 위에 자리 잡은 까치집에도 쌓이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쪽의 벚나무 가지에도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가더군요.       

오랜 시간 동안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벚나무는 마치 잠을 자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눈에 잘 띄지 않은 채 갈색으로 말라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른 봄이 되자 벚나무의 마른 줄기에는 어떤 변화가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가지마다 뭔가 물이 오르는 듯도 하고 가지의 끝에서는 어떤 생기도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벚나무 가지마다 흰꽃이 툭툭 터지며 새하얀 나무가 되어갔습니다. 어느 날은 봄비의 작은 물방울들은 하얀 꽃들과 함께 숲 속에 가득하고 촉촉이 젖은 벚꽃들은 싱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봄날의 생기와 화사한 꽃들의 활기가 봄비와 함께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햇살이 비치고 바람이 불고 다시 비가 왔습니다. 벚꽃 잎은 마치 눈처럼 흩날리며 수풀에도 땅에도 공원의 벤치에도 쌓여갔습니다. 이제 꽃은 지난 시간의 화려함을 남긴 채 그렇게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로의 경계석에 떨어진 꽃잎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운 모습이더군요.      

    

시간은 시계를 봐서 알게 되기도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자연의 변화 속에서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런데 자연의 시간은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듯합니다. 나무에 새순이 돋고 꽃이 피고 또 떨어지는 것처럼 사람도 나고, 자라고 또 자연 속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기억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요.     

퇴근길에 들었던 할아버지의 시계를 다시 들어봅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의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왠지 정감 있게 느껴집니다. 우리말이어서 일까요? 아니면 가사 때문일까요? 길지 않은 노랫말에는 할아버지의 인생과 함께한 시계의 이야기가 담겨있네요. 아련한 기억 속의 시간과 삶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며 들으니 왠지 마음이 뭉클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