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런데 삶에 목적이란 게 있기나 한 걸까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길을 걸으며 잠시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삶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여러 삶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말문이 막힙니다. 그런데 삶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생각해온 것일까요? 그 시간을 되돌아 추정해보면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일 듯합니다. 인류의 인지가 발달하고 자연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사람과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겠지요. 동굴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신기하기도 하고 또 기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그들 또한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죽음은 조금 심각한 경험이었을 듯합니다. 같이 먹고 마시며 살아가던 사람들에게서 생명이 사라지는 모습은 슬프기도 하고 또 이해하기 힘든 일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들의 활기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했을 것이고요. 이제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믿게 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꿈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며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죽은 자가 소멸해가는 모습을 보며 영혼과 신체가 분리된다고 생각했을 듯도 합니다.
고대 인류가 죽은 사람을 매장한 것은 죽은 사람을 노리는 동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드는군요. 이제 땅속은 죽은 자가 돌아가는 공간이 됩니다. 나아가 땅속에는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지하 세계도 상상하게 되고요. 그런데 영혼은 왜 하늘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을까요? 실체가 있는 육체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영혼은 자유롭게 떠다닌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삶과 죽음만이 아니고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하는군요. 누군가를 땅에 묻고 돌아오던 어떤 사람은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보며 오래도록 생각에 잠겼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철학과 종교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생각과 지혜가 전해졌지만 그 해답은 여전히 구해 가는 과정에 있는 듯합니다. 삶의 형태는 바뀌었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은 때문일까요? 아니면 정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해오는 까닭일까요?
그런데 삶의 목적이 죽음일까요? 죽음은 그저 생물학적인 존재가 자연스럽게 소멸해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것의 의미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이겠죠. 탄생이 한 삶의 시작이라면 죽음은 그 끝을 말하는 것일 듯합니다. 그러므로 탄생이 목적이 될 수 없듯이 죽음도 목적이 되지 못할 듯합니다. 죽음은 삶과 죽음이라 할 만큼 같은 비중이 있는 것도 아닌 듯하고요.
이제 생각해 보니 인간은 원래 목적 없이 태어났습니다. 그가 그인 것은 대자연의 원리에 의한 우연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성장해 가면서 어떤 목적이 있다고 믿게 되는 듯합니다. 그렇게 목적을 가지는 삶이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런데 원래부터 주어진 삶의 목적은 없는 듯합니다. 다만 각자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발견해가는 삶의 의미가 목적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삶의 의미는 그 과정 과정에서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전체적인 재해석을 통해 현재의 의미가 되는 듯도 하고요. 삶의 목적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는 따로 정해진 답은 없는 듯합니다.
길에서 바라보는 매자의 열매는 빨갛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매자가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목적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열매는 상처가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색깔로 변해가는군요. 잘 익은 열매는 때가 되면 땅으로 돌아가 새로운 싹을 틔우겠죠. 어쩌면 모든 생명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그것은 아름다운 것인가 봅니다.
엘가의 탄식(Sospiri)을 솔 가베타의 첼로 연주로 들어봅니다. 그윽한 그녀의 연주를 들으니 왠지 탄식보다는 어떤 추억이 떠오르네요. 어쩌면 이제는 지나가는 이 가을에 열매를 보며 꽃의 기억을 떠올리기 때문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