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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윈드 Oct 22. 2022

한 해를 보내며 떠오르는 생각에 들어보는 브람스

매년 연말이면 그랬지만 오늘도 한 해를 돌아보고 또 한 해를 생각하게 됩니다. 문득, 왜 일 년의 시작을 이 추운 계절로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는 원래 돌고 있었으니까 꽃이 피는 계절의 어느 날을 1월 1일로 정해도 되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미 문명인이 된 저는 또 습관처럼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것이니 또 새해의 희망을 가져보게 되겠지요.     


이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한 해를 보내는 마음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군요. 우리는 시간을 나누어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또 일 년이 됩니다. 그에 따라 나이도 먹게 되고요.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지만 그렇게 나누어진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는군요. 어떤 감정도 느끼면서요.        


시간은 빠르다고 합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한 해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기억이 계속되는 한 시간은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겠지요. 연말이라 생각하니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음악도 들어봅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지휘로 듣는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의 멜로디가 오늘따라 더 마음에 들어옵니다.      


지난 봄날에 피어나던 꽃들이 생각납니다. 이곳저곳에서 화려한 생명의 약동을 보여주었지요. 그렇게 봄은 꽃들의 미소와 함께 왔던 듯합니다. 그리고 꽃이 초록의 열매로 커가며 여름이 되었고 다시 가을이 되니 붉고 단단하게 익어갔습니다. 이제 겨울이 되어 다들 땅으로 돌아가더니 좀 더 멀리 가려는 열매는 눈을 맞고 있네요.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을 보며 걷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산책자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어떤 시간의 매듭을 짓는 순간들이 있기도 합니다.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에는 어떤 단계가 있으니까요. 우리는 만나고 또 헤어지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과 작별은 아쉽기도 하지만 그들의 기억은 남아있겠지요. 꽃다발을 전해주던 반가운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시간은 그저 흐르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과거는 어디론가 가버린 게 아니고 현재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것이네요. 미래는 현재의 마음속의 바람이겠지요. 살아있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는 현재의 일인 듯합니다. 조금 여유로워진 시간은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옵니다. 친구들과 나누는 막걸리 잔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갑니다. 세계를 휩쓰는 바이러스도 친구들과의 우정은 방해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에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이 공유되어 갑니다.      


그들의 새파랐던 젊은 시절의 모습과 연륜이 묻어나는 지금의 모습이 교차되며 수많은 이야기가 배어 나옵니다. 그 모습은 또한 나의 모습이기도 하겠지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살아가는 그들이 있어 더욱 즐거워집니다. 오늘 저녁의 친구들과의 만남이 벌써 기다려지는군요. 잠시 빗방울이 맺혀있던 초록의 야광나무 열매를 바라봅니다.      


     

변해가는 자연의 계절 속에서 우리의 생각 또한 익어가는 듯합니다. 이런저런 글을 써보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정리되고 또한 명료해집니다. 조금 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 보게도 되더군요. 그런데 어떤 상상은 어떤 이야기로 구체화되기도 합니다. 지난 늦가을에 상상의 짧은 이야기를 써보았는데 그 순간이 즐겁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상을 또한 세상과 공유하고 싶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상상을 이야기로 써보는 자신만의 그 시간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의 시간이 흘러가듯 아이들의 시간도 함께 흐르는 듯합니다. 개구쟁이 아이들이 벌써 다 커버린 듯합니다. 우리가 그랬듯이 그들도 그들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겠지요. 어떤 즐거움과 행복도 느끼면서요. 그저 조용한 미소로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가족과의 저녁식사는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것도 나누어 먹는 즐거운 시간입니다. 같이 와인도 한잔 하게 되고요. 시간은 그렇게 익어간 듯합니다. 문득 지난가을에 빨갛게 익어가던 야광나무 열매가 생각납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이제는 잎이 다 떨어진 마른 가지에 겨울 햇살이 내려옵니다. 이제 시간은 흘러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겠지만 당분간은 겨울 풍경을 보게 되겠지요. 지난번 눈 속에서 진한 빨간색을 자랑하던 낙상홍의 열매를 바라보며 브람스를 한곡 더 들어야겠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낙상홍의 열매가 더욱 상기된 듯한데 그 안에는 많은 시간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을 스타니슬라프 스크로바체프스키의 지휘와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어봅니다. 마침내 4악장에 다다른 삶의 무게와 환희가 느껴집니다. 멜로디를 따라가니 마음속에서 어떤 기쁨이 점점 솟아오릅니다. 달콤한 연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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