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중증 시각 장애인의 스몰 스텝 1탄
일상 에서 스몰스텝
사고후, Ptsd 증상이 장애로 고착 되어, 매일 새벽이 두렵다.
퇴원한 지금도 사고 당시, 느꼈던 고통들이 온몸에 느껴진다.
그런 생활을 2년 가량 하는 시각 장애인 이다.
그과정 에서 내가 속해있던 사회와 집단에 한계를 보고 느낀것이 더 힘들다.
부조리 하고,비합리적이고,대한민국 안에서 헌법과 법률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는 그런 사회를 경험했다.
분명 좋은 사람들도 많다
딱 그만큼 이유없이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많이 경험했다.
도주치상 가해자는 사건 자체를 인지 하지 못했다는 말도 안되는 법망을 기망하는 뻔한 주장과직접 증거 확보에 실패한 경찰의 부실했던 초동수사 ,
내사종결권 남용등으로, 증거확보 부터 난항 이였다.
경찰이 사고사실 확인서에 상당시간 차를 멈추고 본인 차와 부딪힌 곳을 살피고
안전의무, 구조의무등을 지키지 않은체 떠나버렸다. 도주치상 그자체다.
내머리 모양 그대로 백미러와 블랙박스와 같이 박혔다.
그리고 안전벨트를 매고,주정차 구역에, 정차된 상태라 더 큰 충격을 헤드레스트로 부터 받았다.
전치 12주를 받았고, 5개에 치관이 골절되고,턱,목,허리,꼬리뼈,발목
그리고 심한 뇌진탕을 얻기 충분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헌법이 정한, 의무를 지켜야하고, 권리도 지켜내야 한다.
그게 자본주의속 민주주의가 운영될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에,
법치주의는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내가 국가에 지킨 의무들과 달리, 국가는 나의 권리를 지켜주는데
무관심 했고, 무지했다. 그 무관심이 정말 힘든 시간들을 만들었다.
나의 인생을 바꾼 사고는 그들에게 큰 성과가 되지 않는 귀찮은 일로 받아들여졌다.
아직, 대한민국은 망국인 이씨 조선왕조 그리고 주자에 성리학의
망령을 잊지 못하는것 같다.
그래도 나라이고, 군대를 가진 군주 인데...
제대로된 군사적 저항도 없이 , 식민지배를 당했다.
그들은 그 댓가로 이왕가로,화족으로 일본 패전후, 사라졌다 여기지만...
그들은 아직 왕족으로 일본과 대한민국에 대우를 받고 살아간다.
망국에 왕조와 왕족은 망국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
그들은 그들이 역성혁명 명분으로 전조 왕씨 왕조를 답습하고 있다.
역사적 문제와 외교적 문제는 철저히 분리해야하는것은 사실이다.
이부분에 대하여 찬성한다.
하지만, 역사적인 진실된 사건에 대하여
분명한 인정, 구체적인 사과와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은 패전국 이다. 하지만 패전의 댓가는 한반도가 전부 지고 있다.
한반도에 사는 모든 대한민국 사람은
우리는 부강하지 못했던 역사를반성하고,
그역사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반드시 잊으면안된다.
나는 광복이라는 말이 싫다.
다시 재건됨을 전제한 단어의 의미 때문 이다.
이씨 왕조는 망하였다. 이땅 에서 주자의 성리학은 실패한 통치제도 이다.
헌법상 ,우리는 한반도에 처음 세워진 민주 공화정 국가이다.
그래서 해방과 독립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손으로 독립했다기 보다는,
외세에게 진 일본에게어부지리로 국가를 얻었다.
그댓가는 아직 한반도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해당글과 맥락이 다르고, 통일성이 떨어진다 말할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의미는 정치적 토의가 아니다.
그리고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다.
대한민국 시작에 대하여, 추후 한반도 정세에 대한 한청년에 주관적 생각이다.
헌법상 대한민국 범주에 포함된 북쪽과 우리는 시작 부터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패전국 일본이 아닌, 우리가 미국 ,소련, 자유주의 ,사회주의 이념에 대립에
상처가 한반도에 생겼다. 그리고, 북쪽도,우리도 국가를 판 이들에 대하여,
철저한 책임을 묻지 못했다.
그들과 그들에 후손은 다양한 형태로 부,권위,권력을 대물림 되었다.
이씨 왕조가 망했다 하더라도, 한반도에 국민들에 국가 대한민국 건립을
위해, 이름없이 죽어간 이들에 후손은 글자는 커녕 이사회에 소외된 계층인
경우가 많다.
이런 시작과 건국 70여년 시간 국가에 정치와 정채 ,국민에 권리에
무관심한 청년들 ,장애를 가진 청년들 이 생겨 날수 밖에 없다.
이는, 잘못 되었다. 우리세대에 의식주,희로애락,생로병사,관혼상제가
걸린 큰 문제이다. 현재 선택에 책임을 현선택을 한 이가 아니라,
우리 세대가 철저히 져야만 한다.
열심히만 살아서 내집,내차,따뜻한옷,따뜻한 밥상 그리고 내자녀 에게 기회를
줄수있다는 확신이 우리 세대에 존재 하지 않는다.
시작해볼 기회도 허락하지 않는다. 한 과정이 마치고 , 숨쉴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느끼는 어른에 모습이 아닌 ,
청년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과 진지한 소통을 이어가는
어른 이고 싶다.
나이가 들면
나도 때론, 편견을 가지고, 편견의 프리즘에 못 벗어날때도 많았다.
이번 입원이 의미가 컸던것은 관계에 있어,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다보니,
관찰자 시점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가 모든 일에 최우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장 상처를 많이 받고, 오래가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버티고, 참는것보다 스몰스텝 부터 안되면, 안된이유를 찾고
반성 하며, 똑같은상황,조건에서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것이
중요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퇴원이후 ,한달정도는 단 1개라도 루틴을 지키며,
조금씩 보폭을 넓혀도 보고,돌아도 보고 보폭을 좁혀도 보며,
천천히 쌓아가볼 계획이다.
쌓아가는게 아니라, 이루는것은 늘 벅찼다.
그리고 내게 맞지 않는 옷임을 깨달아도, 쉽게 놓지를 못했다.
가족도 타인인데,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의 실망이 보였다.
그래서 그옷을 입고 있었고, 무리했기에 일련의 불행들이 몰려온것 같다.
나 라는 사람을 아직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스몰스텝을 쌓아가며, 알아가볼 생각이다.
나는 보건 계열 제도,무역에 관심이 많다.
그 이유는, 내가 중증 장애를 매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방비,건설,교통 만큼 쏟아붓는곳이 보건이다.
하지만, 보건현실은 헌법이 명시한 이동권 조차 보호되지 않으며,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 있는지도 모르는 행정가들이 많다.
보다 현실적인 보건 형태가 꾸려지면 한다.
그게 사회의 내일을 안정화 시키는 일이라 생각한다.
인터넷이 있어도, 정보의 홍수 속 에서 지방 거점 도시여도,서울과 정보격차,
의료시설,교육,시민의식 격차가 크다.
이부분은 인재들이 지방에 가면 이러한, 인프라적 손해를 본다는
확신을 해서, 서울,양보해서 수도권이 아니면...
차라리 해외를 나간다.
인재가 떠나가는 나라는 발전의 한계가 있고, 그시작부터 잃어버린 시간을
겪게된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속 에서 나를 찾고 구하고 싶다.
장애가 있다고
도전을 피하기 보다는, 도움을 받으며,나아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도 꽤 괜찮은 어른으로 나이가 들어가는거지
늙는것은 아니였으면 좋다.
장애를 얻은후, 2년간 신체,정신적 ,사회적 변화가 컸다.
인정 하는게 비정상 일수도 있다
이해는 더더욱 아직은 이른것 같다.
이를 알고, 스몰스텝 부터 채워갈것이다.
내가 스몰스텝 으로 세운 루틴을 채우면서 나도 조금은 장애에서
정신 만큼은 구속되고 싶지 않고, 자유까지는 아니여도, 선택할
여유는 가지고 살고 싶다.
두서없이 삼성 갤럭시 폴드4 로 노란색 큰 자판으로 그냥 쳐본다.
1년후 내가 이글을 다시 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일단은, 1년은 최선을 다해 건강을 지키고,악화가 아닌,현상 유지하며
살아가 보겠다는 다짐이다.
죽밥 프로젝트 시작!!!
29살에 시작하는것도 늦지는 않은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