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나의 첫 연예인 에게 늦게 보내는 편지

Small step(나에게는 비틀즈의 음악보다 sg워너비 형들의 노래가)

by 지율

작년은 장애 판정이 나고, 공식적인 중증 시각 장애인(중증시야)이 되었다.

의학계열을 공부했기에, 손실된 신경은 현대 의학상 회복이 불 가능 함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내일은 더 보이겠지, 보이겠지 하며, 희망 고문을 했었다.


그 희망고문을 끝내고, 인정해야 되는 해였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 으로도 피폐 그 자체 였다.

무기력 했고, 그나마 주어진 일도, 손에 전혀 잡히지 않았다.


막연해서 ,공포스러웠고, 막막했다.

1년 정도의 장애를 인지한 경험치, 소용이 없었다.

작년 이맘때는 자거나, 그나마 주어진 일을 하거나,한숨만 쉬었다.


하... 매일 쉬는 숨을 들이 마시는것도 내뱉는것도 무거웠다.

그렇게 보내던 중, 어머니가 예매하신 진호형의 첫 콘서트

노들섬에 혹시 늦게 도착할까 보채고 보채서 얼마나 일찍 갔는지 몰랐다.


콘서트 하나도 주치의 교수님들에 허가가 떨어져야 했다.

그나마 보이는 부분을 잘 활용도 못했고, 작업 치료후, 개인적으로 해야하는

재활을 꾸준히 할 자산적 여유도 없었지만...

마음의 여유는 더 없었다.


교수님들에 허락을 받기위해 , 사고후, 제일 괜찮아 보이려고 노력했다.

교수님들이 한숨 쉬시며, 여러가지 조건이 달린 조건부 허락 이였다.

조건보다, 가서 직접 목소리를 들을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안전 때문에, 1층에 자리를 예약 했지만...

여러 직원들에 의논 끝에, 2층 휠체어 좌석에 갔다.

그래도 행복했다. 색깔을 아무리 진하게 해도 조명은 2층 에서도 강하였다.


하지만,두문불출 하던 나의 첫 연예인이 준비한 무대를 귀로 들을수

있음에, 감동 그 자체 였다.

내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직업 재활을 시작을 하게 된 계기도

이 무대 에서 느낀 전율 때문이였다.


형들의 노래를 들으면, 천진난만 했던 10살의 나 였다.

달라진것은 장애와 나와 형들의 세월 뿐 이였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환아들을 위해 병원에서 낭만과 인생을 부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었다.


나의 첫 연예인을 물론 스피커 이지만...

직접 들을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웅성대는 소리로 비상 안정제,신경 진통제를

최대용량을 섭취하고도 토할듯 어지러워도 그냥 좋았다.


그 경험이 나를 완전하지 않지만, 사회에 나오는 계기를 주었다.

물론, 시기적 으로 다소 무리였고, 대학병원 에서 작업치료 이상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운동치료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으로

버텼던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 시간이 있어서 small step을 만나고,

루틴을 퇴원후 에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확신한다.


이 유지가 나뿐만 아니라, 임시 보호자인 사고후 충격으로 더 편찮아

지신 어머니 에게도 힘이 된것 같다. 몰랐지만, 어머니가 흰지팡이를

짚어도 제한적인 시야장애를 걱정하셔서 뒤에 따라오셨다.

그러기 위해서, 독한약도, 세끼도 챙겨 드셨다.


최근에 경제적 문제에 있어, 의존성이 강하다 느끼던 어머니와

충돌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차분히 만보,글읽기,점자공부, 시쓰기를 하고,오랜만에

형들의 노래를 틀었다.나와 어머니 에게 불후의 명곡 그 자체였다.


형들의 노래를 들으며, 곰곰히 생각했다.

아직도 힘들고,아프고,불편하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small step 유지까지

오게 한 계기,터닝포인트에 나의 첫 연예인 sg 워너비 형들,김진호 형이

있었구나 생각했다.


올해 봄에 형들이 다시 sg워너비로 모일때, 내가 돈을 모아서 어머니께

생신 선물로 들렸다. 형들 노래에 펑펑 울고, 일어서서 춤도 추시는 어머니를

처음 보고, 당황도 했지만...

이순간을 이어가고 싶다 생각했던것 같고, 그것이 쌓여 버텼던것 같고,

그마음이 small step을 죽을만큼 힘들지만 순간을 채워가는 원동력 인것 같다.


나는 장애인 이다.

제한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때도 콘서트 참여조건은 같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후유증이 진행 안되고, 행복하고, 자유롭고 싶다.


가능하다면, 배워본적 없는 음악 중 귀로 듣고 따라할수 있는 보컬을

배워보고 싶다. 그리고 시각 장애인 생활체육을 즐기고 싶다.


나의 small step 유지는 과감한 결단과 행동이 수반된 노력 이였다.

그것이 나의 노력만이 아니였다. 어머니의 노력이 있었고, 힘든 순간,

포기 하고 싶은 순간마다 형들의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형들로 계속 남겨두고 싶은 나의 첫 연예인 sg 워너비.


글과 시를 통해, 늦게나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진호 형님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덕담과 응원 그리고 위로가

나도,어머니도 아픈 와중에 자유와 행복을 꿈꾸게 도운것 같다.


10살의 소년은 세월속에,장애를 얻고,30살 청년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형들 노래를 듣는 시간 만큼은 10살 소년 그 자체로 남는다.

그게 큰 힘이고, 큰위로가 되었다.


깊게 생각하지 못해서 인지, 되짚어 보지 못했던 공기 같은 존재들.

공기 같아 내가 고맙다,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말에 인색했던것은

아닌지 이글을 마무리 지으며, 반성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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