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대학생 으로 1학기 과제를 행정적 사형인 "직권말소"당한이)
문명이라 불리기 위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기술도 ,자본도 아니다.그것은 “인간에 대한 존중” 이다.
인간 이라는 사실만으로 인간이라면 존엄한 존재로서 대우 받을수 있는 사회적
구조와 시스템 이다.
어떤 문명도 그들이 이룩한 어떤 위대한 성취도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우리가 사는 현대 문명에
“다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다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성찰하게 하는 영화 였다.
주인공 세명의 흑인 여성은 미국 우주개발의 실질적 주역 이였다.
하지만,회의실에 들어갈수 없었다. 화장실 조차 따로 써야 했다.
그들은 “인간”으로 “다름”이란 이유로 존중받지 못했다.
그들의 지적 역량과 능력은 사회적 공헌으로 증명되었다.
하지만,그 증명의 기록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존재를 증명했지만, 그녀들은 기억되지 않았다. 그것이
현대사회 현재와 멀지 않은 과거 이야기다. 제도와 사회적
구조에 의한 침묵이 개인에게 얼마나 완강하고, 치명적인지를
보여줄수 있다. 편견의 구조가 얼마나 일상적이고,교묘한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기록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 침묵된 존재들이 “다름”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말할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영화는
사회적 구조와 제도,문화적 인식의 변화에 대한 노력이 확보되어야
“다름”이라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이라는 개념이 무시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인권,인간의 존엄성 철학적 개념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것은 “다름”을 가진 이들에게 물리적 환경의 문제다.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구조화된 차별의 표상들 이였다.
우리사회는 영화의 시대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성과보다
조건을 먼저 본다.
조건 속에서 “다름”은 정당한 배제의 사유일 뿐이다.
이것이 앞에서는 인권을 말하고, 현실에서“다름”을
배척하는 사회의 실태를 이 영화는 있는그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 배경인 과거 미국 사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 장애라는 신체적 한계
란,“다름”을 가진 본인은 이보다 나을 것 없는 구조가
존재한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수도권 혹은 지방 출신 이라는 이유로,
성별을 이유로, 학력을 이유로, 장애를 이유로 노력으로 바꿀수
없는것들이 근거가 되어서 우리의 입을 막는다.
이들은 특별하지 않다. 모든 사람은 완벽하게 다르다.
다만,“다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구조 때문에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다름”은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기회의 평등을 넘어선, 결과의 평등을 향해야 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있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현 인류가 선택한 경제 체제 이다. 그런데, 현재
이땅에 최소한에 동일한 출발선 조차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진정한 인권은 “조건 없는 상호 존중”이며,
“설명하지 않아도 타인을 무시하지 않는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사회는 진정한 인권을 사용할수 있는 사회인가 장애
청년은 “다름”을 사회에 반문하게 된다.
인간이란 얼마나 쉽게 잊혀질수 있고, 개인으로 사회를 위한 노력 마저
얼마나 쉽게 잊혀질수 있는지 이 영화를 보며, 느꼈다. 반대로 인간이란,
강하게 “다름”을 주장해야만 그나마 보이지 않지만, 선명한 사회의
유리벽에 부딪혀볼수 있고, 그것이 기술의 진보 만큼이나, 같이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초고령화 사회, 인구 절벽 시대에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존엄은 증명할수 없다. 그렇기에 그 가치를 헌법 이라는 법률이
보호 한다고 보여진다.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헌법을 통해
대한민국은 이미 천명하였다.
그렇다면 우리사회가 앞으로 만들어 가야할 사회는 무엇인가
행정적 사형인 “직권말소”를 죄없이 집행당한, 중도장애를 가진
청년은 사회에 반문해보게 됩니다.“다름”이란 ,이유로 주인공들도
사회로 향하는 첫걸음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본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음이 쌓여 나아가듯
본인도 본인의 위치에서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 쉬지 않고 부딪혀야 한다
느꼈다. “다름”은 죄가 아니다. “노력”으로 변화할수 없는 신체적 ,사회적
한계를 “배척”하는 것은 비문명적인 “명예롭지 않은 잔혹한 차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