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다

中年 中心

by 허니

은퇴를 준비하는 공직자에게 정기적으로 강연을 한지 시간이 제법 많이 흘렀다. 강연이라는 것이 늘 같은 것 같지만 수강생들이 바뀌면 늘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사람, 여러 계층, 지역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은 “오늘은 누구를 만날까?”라는 설렘까지 동반하는 즐거운 여행인 셈이다.

몇 해전 일이다. 그날 만난 사람들은 특히 각급 학교의 선생님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들 점잖은 자세와 품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분위기였다. 강연 중간에 참가자들에게 질문을 했다. “직장에 출근하고는 혹시 배우자에게 전화하시는 분 계십니까?”하고 물으니 많이 쑥스러워한다.

“집에 가서 보면 될 것을 뭣 하러 전화하느냐?”, “그럴 시간이 없다”…. 약간의 소란스러움 속에 어느 한 분이 손을 들어 대답한다. “오늘 아침에도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그분을 주시했다. 나는 바로 그분을 보면서 “연수중에도 전화를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혹 무슨 말씀을 나누셨는지 궁금합니다”라고 물었다.


그분 왈, “여보 오늘 장미 옆에 가지 마. 장미가 당신 얼굴 보고 질투할까 걱정되네”. 강연장은 온통 환호의 박수였다. 계절은 6월, 연수원 담장 너머 피어 있는 장미 향이 황홀하다.


현직 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이신 그분은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집에 남아있는 부인에게 전화 거는 것이 일상화되었단다. 매일 전화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그에게는 부인이 사랑스럽다. 그가 집에 돌아가면 부인은 하루 동안 일어났던 모든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단다.


저녁 시간에 그 분과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원래 무뚝뚝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말도 별로 없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혼자만의 취미생활 외에는 별 다를 게 없는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왔다. 살아오면서 크게 어려움 없이 순탄한 결혼생활을 해왔다고 생각했던 그가 결혼하고 10년 정도가 지나니 문득 “내가 이 여자와는 잘 살고 있는지, 내가 그리던 결혼생활, 내 젊은 시절 꿈은 이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인생이 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문득문득 그런 생각들이 들 때마다 잠을 못 자고 깨어있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대화가 별로 없었던 남편에 대한 부인의 항의가 있은 후 어렵사리 부인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점차 시간이 흐르고 “이 여자가 정말 내 여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인의 일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부부간 많은 얘기와 취미생활을 같이 하기로 했단다.


무엇이 이 남자를 변하게 한 것일까? 그에게는 보다 나은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부인의 ‘통찰력’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잘 꾸려 나가는 결혼생활 같았는데 얘들이 성장하면서 부부간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 부부는 서로의 역할과 결혼생활에서의 자세, 서운한 점, 개선해야 될 부분 등등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점차 서로에게 몰입하게 되었단다.


말이 없던 남편은 집에서 혼자 아이들을 키웠던 아내의 수고로움에 고마워했고 대화 상대가 필요했던 아내의 하루 동안의 못다 한 수다를 받아주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점차 부부가 같이 여행을 하기도 하고, 학교 근처 카페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유머스러운 남자, 멋진 남자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애들이 성장하면서 그런 엄마, 아빠를 존경하고 많이 따르는 것을 보고는 서로 공감하고 교류하는 것이 가정에서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단다.


어느 날 출근하면서 ‘아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전화를 했더니 부인이 “왜 전화했느냐”하길래 “그냥….”이라는 말 한마디 하고는 끊었단다.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는 부인의 “종일 기분이 좋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매일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들 부부의 오글거리는 ‘굿모닝 메시지’의 시작이었다.


일생에서 중년기는 삶의 의미나 자신의 내적 욕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신의 잠재력을 인식하는 시기라고 한다. 따라서 자신의 삶 전반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젊은 시절에 계획했던 ‘내 인생의 목표’를 생각해보고 미래에의 가능성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자칫 머뭇거리거나 방황하는 시간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심리적 위기를 겪게 된다. 이것이 중년의 또 다른 위기라면 당신은 기꺼이 파트너에게 손을 뻗어 대화를 청하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중년 남성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말을 아끼는 것도 아니고 말을 못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일을 한다. 행동이 ‘자신’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묵묵히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다 보니 평소 집에 와서도 말이 없다. 특별한 문제도 없으니 말이 필요치 않다. 그러다 점차 부부간 대화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남자는 하루에 1만 개의 단어를, 여자는 2만 개의 단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차이인가? 흔히들 남자는 말을 꺼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하긴 ‘남자는 말이 없어야 진중해 보인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집안 특유의 분위기나 성장과정에서 겪은 문화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가정에서의 부부간 대화는 두 사람만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것 외에도 자녀들에게 사랑은 물론 그들의 성장을 돕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부부는 같이 살면서 닮아 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편한 곳, 그곳이 가정이다. 그 그림에 자식들이 있다. 부부가 ‘하루’를 이야기하는 그곳에 자녀들이 밥을 먹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뜨거운 가을 햇볕, 밤나무에 밤톨이 익어가고 있다. 우리의 중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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